글쓴이 | kilshi | 2007-11-29 20:23:41, 조회 : 1,787 |
Invictus 굴하지 않으리
William Ernest Henley 윌리엄 어니스트 헨리
Out of the night that covers me, 온 세상이 지옥처럼 캄캄하게
Black as the Pit from pole to pole, 나를 뒤덮은 밤의 어둠 속에서
I thank whatever gods may be 나는 어떤 신들이든 그들에
For my unconquerable soul. 내 불굴의 영혼 주심 감사하노라.
In the fell clutch of circumstance 환경의 잔인한 손아귀에 잡혔을 때도
I have not winced nor cried aloud. 난 주춤거리지도 울지도 않았노라.
Under the bludgeonings of chance 운명의 몽둥이에 수없이 두들겨 맞아
My head is bloody, but unbowed. 내 머리 피 흘리지만 굴하지 않노라.
Beyond this place of wrath and tears 분노와 눈물의 이승 저 너머엔
Looms but the Horror of the shade, 유령의 공포만이 섬뜩하게 떠오른다.
And yet the menace of the years 허나 세월의 위협은 지금도 앞으로도
Finds and shall find me unafraid. 내 두려워하는 모습 보지 못하리라.
It matters not how strait the gate, 상관치 않으리라, 천국 문 아무리 좁고
How charged with punishments the scroll, 저승 명부에 온갖 형벌 적혀 있다 해도
I am the master of my fate: 나는 내 운명의 주인이요
I am the captain of my soul. 나는 내 영혼의 선장이나니.
-william Ernest Henley(作家)는 다리 불구였다 (1849-1903)-
1905년 11월 30일, 오늘은 충정공(忠正公) 민영환(閔泳煥)선생이 자결한 날이다. 명성황후의 조카이기도 한 그는, 1905년 당시 고종의 시종무관장으로 있을 때, 을사조약이 체결되어 나라를 일본에게 빼앗길 형세에 이르니, 우정대신 조병세와 함께 조약의 폐기를 상소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자, 국민과 각국 공사에게 고하는 유서를 남기고 단도로 자살하였다. 뒤에 충정공이라는 시호와 함께 영의정을 받았다.
민영환이 자결하고 8개월이 지났는데, 피묻은 옷을 간직했던 마루에서 대나무가 솟아 올랐다고 한다. 이른바 혈죽 사건은 당시 언론에도 보도되어 화제가 되었다. 1906년 7월 5일자 대한매일신보에는 이런 기사가 실려 있다.
'공의 집에 푸른 대나무가 자라났다. 생시에 입고 있었던 옷을 걸어두었던 협방 아래서 푸른 대나무가 홀연히 자라난 것이라 한다. 이 대나무는 선죽과 같은 것이니 기이하다'
대나무에는 45개의 입사귀가 났는데, 그것은 민충정공의 순국할 때 나이와 같은 숫자여서 더욱 신기하게 여겨졌다.
잊혀졌던 혈죽이 다시 세상에 나온 것은 광복 이후, 일제가 뽑아버린 대나무를 고이 수습한 충정공의 부인 박수영씨에 의해서다. 박씨는 자줏빛 보자기로 대나무를 싸고 폭 8센티 길이 50 센티 정도의 나무 상자 속에 넣어 보관해 왔는데, 유족들이 그것을 1962년 고려대 박물관에 기증, 옮겨지게 됐다. 현재 고려대 박물관에는 혈죽과 1906년 7월 15일 일본인 사진기사 기쿠다가 촬영한 사진(아래)이 전시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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