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쓴이 | kilshi | 2007-04-12 15:57:42, 조회 : 935 |
1960년대 초, 내가 묵호국민학교에 근무할 때 최상학(정확한가?)이라는 여러 해 선배분이 계셨다. 연배가 달랐기 때문에 잘 알지 못했지만, 내가 보기에는 철두철미하고, 사리가 분명하고, 검소한 모범적인 생활을 하는 분이셨다. 그 분은 술자리에서건 어디서건, ‘삶’이 화제로 등장하면 언제나, ‘나는 보통사람으로 살아가려고 노력한다. 보편적인 생각을 가지고, 중 정도의 생활을 하는, 보통 인간. 모든 점에서 더도 덜도 아닌, 수우미양가 중의 미(美)의 인간으로 살 수 있으면 그것으로 족하다.’는 말을 자주 하셨다. 그 말 속에는 중용(中庸)의 철학적 의미도 포함되었던 것으로 느꼈었다. 그 때 스무 살도 채 되지 않은 혈기왕성하고 철이 덜든 나로서는 그 깊이를 모두 헤아릴 수 없었지만, 그 말의 의미심장함이 가슴에 느껴졌었다. 그러나 한편으론, 선생이니까 어쩌지 못하여 그렇게 할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꿈도 없는 맥빠진 인생관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였다.
그런데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느끼는 것은, 보통사람으로 살아간다는 것, 미(美)의 인생을 유지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절실하게 깨닫게 된다. 인간이기 때문에 감정에 휩쓸려 이성을 잃을 때도 있고, 욕심이라는 것이 진실을 버리게 하고, 질투와 시기가 미움과 저주를 낳고, 때로는 가당치도 않을 상상도 하게 된다. 나는 ‘미(美)’는 빼 버리고, 그냥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으면 족하다는 생각을 한다.
나는
I will be flesh and blood;
For there was never yet philosopher
That could endure the toothache patiently,
However they have writ the style of gods
And made a push at chance and sufferance.
(Much Ado About Nothing 5.1.34-38)
나는 살과 피로된 인간으로 만족 한다네.
제 아무리 신과 같은 문구를 늘어놓고 불운과 고통을
별것 아닌 것으로 감연히 맞서던 철학자라 하더라도
치통을 참고 견디어 내지는 못했으니까.
(『헛소동』5막1장 34-38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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