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현대사 보물
그 붉었던 6월이 돌아왔습니다. 70여 년이 지나도록 잊혀지지 않는, 잊을 수 없는 그 아픈 6월!
1950. 6. 25. 일요일 새벽.
사기막으로 공비토벌 나가 한동안 집에 오지 않았던 우리집 하숙생 김순경, 심순경 아저씨(집 앞 큰길 건너 사천(沙川)국민학교 옆에 강릉경찰서 사천지서가 있었음)가 문을 열어젖히며,
‘여태 자고 있어요? 빨리 피란가야 하는데…….’(나는‘피란’이 뭔가 했지요)
고함치는 소리에 우리 식구 모두가 잠에서 깨어 옷을 입는 둥 마는 둥, 전투모에 풀을 꽂고 총을 들고 서두는 아저씨들을 따라 황급히 피란이라는 걸 떠났습니다. 나는, 오래 신으라고 사다준 헐렁거리는 고무신을 벗어들고 김순경 손에 이끌려 종종걸음으로 신작롯길을 내달렸습니다.
뱀재 고개에 오르니 멀리 수평선 위로 아침해가 솟아오르고 있었습니다. 불덩이 같이 타오르는 빨간 아침해와 붉은 바다! 황홀하도록 아름다운 광경을 서서 바라볼 수도 없었습니다.
며칠 후 피란에서 돌아와 몇 개월 동안, 붉은 완장을 찬 낯선 얼글들이 작대기를 질질 끌며 거리를 거들먹거리던 인공시절, 인공학교에 불려가 인공노래를 배우기도 했고, 쌕쌕이가 날아와 무슨 인민대회인가를 하고 있던 학교를 폭격하는 것을 지척에서 보았으며, 낮에는 산에 파놓은 방공호 속에 어린 시절의 꿈이 묻혀 지나갔습니다. 1.4후퇴 때에는 영문도 모른 채 울며 울며 뱁새 다리로 눈 길을 걸어 걸어 울진까지 피란을 가야 했습니다.
그 후로 아저씨, 형님들이 머리띠 질끈 동이고 태극기를 휘두르며 목터져라 군가를 부르며 트럭을 타고 나라를 지키러 가는 걸 바라보았습니다. 어린 가슴에도 뜨거운 것이 스쳤습니다.
그 10여년 후, 나도 나라를 지켰던 그 역사입니다.
내가 강릉역에서 장병열차를 타고 입대한 지도 벌써 60년이 지났고, 처참했던 전쟁을 일으킨 원흉이 참회 한 마디 없이 세상 떠난 지도 30년이 지났는데, 남북은 여전히 일촉즉발의 대치 상태입니다.
6·25전쟁으로 학교는 검붉은 불길 속에 잿더미가 되어, 학부모들의 울력으로 초가집 가교사가 지어지는 동안, 우리는 작은 칠판을 들고 나무 그늘 밑으로 냇가로 다니며 공부라는 걸 했습니다. 그 사천초등학교가 개교한 지 금년 100주년이 됩니다. 지난 6.1.에 개교 100주년 기념행사를 성대히 거행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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