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0.이후) 내마음의 여울

사제동행(師弟同行)

최길시 2023. 6. 12. 18:38

사제동행(師弟同行)

 

  “선생님, 여기 내려와 며칠 쉬시다 가시지요?”

  50여 년 동안 간단없이 이어져 오는 연분(年分)인데 핸드폰이란 게 생긴 후로는 틈틈이 들려오는 친숙한 목소리였다. 그의 목소리를 들을 때마다 나는 5,60년대 국민학교 운동회에 있었던 사제동행이라는 경기 장면을 떠올리곤 한다. 학생이 달리다가 선생님 이름이 적힌 카드를 주워 쳐들어보이면 운동장 어디에선가 그 선생님이 달려나와 같이 손잡고 달리는 경기였다. 앞서서 껑충한 황새다리로 종종걸음치며 애타는 눈길로 뒤돌아보는 선생님과 손을 놓칠세라 병아리 가랑이를 한껏 벌리며 끌려가듯 쫓아가며 애원하듯 마주보던 그 순일한 광경은 바라보는 사람들에게 훈훈한 애태움을 안겨주던 경기였다. 세월에 묻혀버린 수많은 옛 정경들 속에서 그 모습이 잊히지 않고 암암한 것은 그 주고받던 눈빛이 내 마음 한구석에 오롯이 살아있기 때문이리라. 선생님 그림자도 밟으면 안 된다고 배우고 가르쳤던 그 근엄하던 시절의 사제지간의 연(緣)이, 세정(世情)이 변하여 인륜(人倫)이라는 말조차 세파에 뭉개져가는 듯한 이 살벌한 시대에도 나에게 오래도록 이어 있다는 것에 자랑과 행복을 느낀다.

 

  몇 해 전인가, 교통이 불편하지만 내려와 자력으로 지은 산가(山家)도 구경하고 며칠 묵어가라는 전화를 받았을 때는, 무료한 노년의 삶을 재미없는 책장 넘기듯 하다가 눈이 번쩍 뜨이는 구절을 본 듯 가슴이 뛰었지만, 오란다고 한달음에 훌쩍 쫓아가 제자집에 묵는다는 것은 그의 가족에게 체신머리 없는 사람의 눈치보이는 일일 것 같아 사양했지만, 집구경 간다는 구실로 마지못하는 척 한 번 다녀온 후로는 연례행사처럼 되어 이제는 오라면 넉살좋게 단결에 날짜를 잡고 만다. 집에서는 꼼지락거리기조차 힘들고 귀찮으면서 버스로 두세 시간을 흔들리고도, 저쪽에서도 차를 가지고 한 시간 넘게 마중나와야 하는 수고로움도 개의찮고 용감하게 떨치고 나서는 것이다. 그와 처음 인연을 맺었던 그 옛날의 못살던 시절 같았으면 꿈도 꾸지 못했을 이런 나들이 양광도, 나라가 이처럼 잘 살게 된 덕과 일제 강점기에 태어나 그 참혹했던 6.26사변(事變)(그때는 사변이라 했다)에도 살아남고 세계 최빈국이었던 5,60년대를 헐떡이며 용케 목숨을 부지하여 이렇게 오래 살아있는 내 명(命) 복에 감사하게 된다.

 

  1967.3.2. 나는 군에서 막 제대한 각진 상고머리와 시퍼렇게 살아있는 군대정신을 앞세우고 그들 앞에 섰었는데 어느 덧 반백년이 넘는 지금까지 이렇게 동행하다니……. 사람 살아가는 일이 때로는 꿈속처럼 참 의외롭다는 생각을 하면서 호사로운 고속버스에 비스듬히 누워 흔들린다. 차창으론 풍요로운 들판과 잘 정돈된 삶의 풍경들이 스쳐 지나가고 머릿속에서는 더 빠르게 옛 일들이 지나가는데 몸은 봉화로 가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시원을 알 수 없는 세월처럼 유장히 흐르는 냇가를 거닌다. 나는 넓은 내를 가로질러 놓인, 이제는 행인이 끊어진 낡은 외나무다리가 외롭다고 했고, 그는 맑은 물에 슬린 모래가 곱다고 하였다. 그는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과 안동 봉정사 극락전을 안내하며, 선생님이 가르쳐 주셨던 우리나라 최고(最古)의 목조건물이 이제는 바뀌었다고 알려주었고, 영주 안동 봉화에 이렇게 많은 서원이 있었던가 싶게 골짜기마다 들어앉은 서원을 돌며 내력을 일러 주면서 한 서원(書院) 앞에서는 선대(先代)의 서원이라며 양반의 후손임을 은근히 어깨 위에 올린다.

  우리는 밤의 숲에 둘러싸인 마당에 나와 앉아 가뭇없이 잊혀져가는 50여 년 전의 얘기들, 그 많던 숙제와 종아리와 회초리와 냉천 바닷가와 중학교 입시를 주고받으며 먼 과거로 돌아다니다가, 하늘마당에 빼곡이 나와앉은 초롱초롱한 별들이 금방이라도 쏟아져 우리의 어깨 위에 내려와 앉을 듯한 밤하늘을 쳐다보며 알퐁스 도데의 ‘별’ 이야기도 하면서, 이 밤이 이대로 새지 않아도 좋을 것 같은 내 몽롱함 속에서 산속의 밤은 속절없이 깊어갔다.

 

  돌아오는 버스 속에서 나는, 철이 모자랐던 살아온 날들을 돌아보면서 남은 여정이 멀지 않겠지만 이제부터라도 느긋이 철을 베풀며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한다. 사제동행 경기는 먼 옛날의 아름다운 추억으로 묻혀 사람들의 기억에서 사라져가는데 나와 그의 사제동행은 몇 년 후면 환갑을 맞지만 60년 세월이 무색하게 변함이 없다. 우리는 피와 살을 나눈 적도 없고, 자고 나면 눈을 마주치는 가까이 이웃한 적도 없고, 연배가 같아 우정을 나눈 적도 없다. 그저 우연히 2년간 사제(師弟)라는 사회적관계에 속했을 뿐이었는데 그 먼 길을 지금도 함께 동행하고 있는 것이다. 인륜(人倫), 정(情), 의리(義理), 그 어떤 한 마디 말로는 설명되지 않는 동행을…….

  지금 조선일보에서 대한민국수립 75주년을 맞아‘현대사의 보물’을 발굴하는 기획 시리즈를 하고 있는데, 나는 이 세상에 태어나 우연히 만들어진 이 ‘보이지 않는 끈’이 내 ‘인생사의 보물’이다. 이제 그리 멀잖을 저기 저만큼의 강을 건널 때 모든 것 다 훌훌 벗어 던져버리더라도 이 가녀린 듯 질기고 끈끈한 끈만은 가슴속에 꽁꽁 묻혀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