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대,
버스를 타고 그 앞 길을 지나다닐 때마다 어른 키 두 배는 되어보이게 아득히 하늘을 받치도록 높이 쌓아올린 돌담 그 너머가 몹시도 궁금했던 그곳. 내가 지나다니던 10여 년 동안에도 어디 한쪽 무너지거나 흔들리거나 까딱하지 않았고, 물론 한 번도 열린 적이 없이 굳굳이 닫혀 있어 늘 궁금했던 그곳.
규격 맞게 다듬지도 않은 제멋대로의 돌을 가지런히 정성스럽게 쌓아올린, 그 옆 경복궁의 엄숙한 역사를 거부하고 등을 돌려앉은 듯한 현대의 반항 같았던 그 모습.
저 속에 도대체 무엇을 감추어 두었길래 저렇게 예쁘고 정성스럽게 감추어두지 않으면 안 되었을까?
그곳이 열렸단다. 이름하여 ‘열린 송현’
이제는 움직이는 게 귀찮게 느껴지는데, 모처럼 먼 길을 나간 기회에 옆의 ‘서울공예박물관’을 보았다. 뜻밖에 감동스러운 곳이었다. ‘금속공예기증특별전’에서 이름조차 처음 들어보는 울진 사람 유리지 작품은 삶을 들여다 보게 하는 치열한 작품들이었다. 더 많은 시간을 천천히 보내고 싶었는데…….
모처럼 나간 김에, 경복궁을 휘돌며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외국인 관광객과 옷소매도 스쳐보고, 여러 번 갔어도 보지 못했던 태원전도 보고, 민비가 시해되었다는 건청궁도 들여다보았다. 전에 보았던 민속박물관에도 뭐가 달라졌나 들어가 보고, 경복궁 뜰을 어슬렁거려 보기도 했다. 다리가 뻐근할 정도로……
무엇보다도 다행스러운 건, 그 굳게 닫혀있던 송현동이 돌고 돌고 돌아 삼성 이건희 전 회장의 기증관이 들어설 자리가 되었다는 것은, 정말로 오랜만에 박수가 저절로 나올 후련한 소식이었다. 열린 송현이 새 주인을 만난 그 광경을 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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