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쓴이 | 김흥수 | 2006-02-12 23:23:31, 조회 : 2,547 |
어제는 종일 행복한 하루였습니다.
교단에 서 계시는 최길시 선생님을 바로 앞에서 계속 바라볼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나는 선생님의 모습을 스스로 많이 알고 있다고 생각하다가도 어떤 날은 기억이 희미해지면서 그 때 더 자세하게 많이 보고 기억해 둘 걸 후회 한 적도 있었습니다.
‘마지막 수업’이 시작되고, 선생님께서 칠판에 수업의 주제를 쓸 때에는 마음속에서 작은 흥분까지 일었습니다. ‘학습목표’라는 글씨체까지 옛날의 그 추억 속으로 빠져들기에 충분했습니다.
나이 오십에 들어 38년 만에 교실에서 선생님의 수업을 다시 들으면서 선생님의 그 움직임 하나하나가 옛날의 내가 기억했던 그 모습들을 살려주어 흡사 시간의 최면에 걸린 사람처럼 일시적이나마 어린 학창시절로 돌아간 듯한 착각에 빠지기도 했습니다.
나는 선생님과 헤어진 후 중학교에 진학 한 이후부터 지금까지 선생님 생각을 참 많이 하고 살았습니다. 학창시절에는 어쩔 수 없이 대비되는 다른 선생님들과의 비교로 선생님을 그리워했었고 사회인이 되어서는 끊임없이 부딪쳐야만 하는 세상사의 옳지 못함 들을 접하면서 선생님을 또 그리워했습니다. 그것은 어릴 적 선생님으로부터 배워 나의 머리 속에 각인되어있는 옳지 못함을 행하거나 방조하는 것에 대하여 적극적으로 거부하거나 바로잡아야한다는 추상같은 선생님의 가르침 때문이라 생각됩니다. 또 장년이 되어서는 선생님의 큰 가르침에 대한 내세울 것 없는 나의 사회적성취가 초라하여 부끄럽고 죄스러움에 - 그리하여 그것의 반대급부로써 선생님을 많이 그리워 한 것 같습니다.
돌이켜보면 나는 지금껏 살아오면서 특히 힘들 때 선생님을 생각하며 용기를 내곤 했습니다. 어려운 결정을 내릴 때도 선생님을 생각했습니다. 선생님을 생각하면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할지가 분명해지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이럴 때 선생님은 어떻게 결정하셨을까? 라는 자문을 하며 선택을 했고 물론 그 결정을 한 후에는 어렵고 힘든 일이 기다리지만 바르고 정직한 선택을 했다는 이유로 마음은 편안해 집니다. 그 편안함은 바로 정직함에서 왔습니다. 정직하여 주눅 들지 않고 당당할 수 있었고, 또 당당하여 마음이 평화로울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솔직히 고백하지만 항상 언제나 그렇게 하지는 못했습니다만, 적어도 그렇게 하려고 많은 노력을 한 것은 사실입니다.
초등 5,6년의 우리 반 급훈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 어린이가 되자!’였습니다. 그것도 2년씩이나 똑 같은 급훈을 매일 보며 생활했습니다. 다른 반의 급훈이 대부분 ‘성실’ ‘인내’ ‘노력’ ‘바른 어린이’ ‘착한 어린이’등등 항상 많이 듣고 보아온 단어들 이였지만, 우리 반은 ‘거짓말’ 이라는 구체적 단어를 사용하여 형식적 구호에 그치지 않고 실질적인 행동을 추진 하셨지요.
언젠가 추운 겨울날 찬 물이 싫어 세수를 하지 않고 등교 했다가 세면 검사에서 거짓말이 탄로 나는 바람에 큰 혼이 나고 학교 뒤 개울에서 얼음 깬 물에 세수를 한 이후부터는 선생님에게 거짓말 할 엄두를 못 냈습니다. 세수하지 않는 아이들은 세수를 하는 것으로 마무리 되었지만 나는 거짓말에 대한 죄 값을 달게 받았지요.
선생님은 우리들을 정말 엄하게 가르치셨습니다. 그러나 선생님께서 엄하기만 하셨다면 이렇게 오랫동안 우리들의 기억에 남지는 않았을 겁니다. 때로는 부드러운 말씀으로 우리들을 이해시키고 설득 시키셨습니다. 우리 반에 키가 작달막한 ‘장대호’ 라는 녀석이 있었습니다. 그 녀석은 공부도 곧잘 했고 재주도 많고 재치도 있는 친구였습니다. 소풍을 가면 녀석은 예의 그 18번인 ‘뺑돌이’ 라는 노래를 우리가 둥근 원으로 모여 앉아 만들어진 중앙에서 한 발과 두 손을 까딱거리며 멋들어지게 불러재끼면 선생님과 소풍을 함께 따라오신 몇 분 학모님들의 칭찬이 자자하셨고 우리들은 부러움 반 시기심 반으로 녀석에게 박수를 보냈습니다. 그 ‘뺑돌이’라는 노래의 가사는 ‘무슨 고무신인가 짚신을 신고 마차를 타고 혹은 걸어서 방랑하는 우리의 뺑돌이…….’ 뭐 이런 내용인데 노래의 분위기가 그 녀석의 분위기와 많이 닮았다는 생각을 지금까지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녀석이 어느 날 선생님과 감히 논쟁을 벌이는 일이 생겼습니다. 내용인즉 아는 산수 문제를 실수로 틀리자 선생님께서 ‘진정한 실력자는 실수를 하지 않기 때문에 알고 틀린 것이 아니라 제대로 몰라서 틀린 것이다.’ 라는 말씀에 녀석이 정면으로 반박을 하고 나선 것입니다. 녀석의 항변은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 질 때가 있는데 사람도 실수를 할 수 있다. 그 문제는 아는 것이 확실하고 분명히 실수로 틀렸다.’ 고 주장하며, 녀석은 당차게도 나름대로의 논리로 선생님께 지지 않고 ‘분명 진정한 실력자도 실수할 수 있다.’고 계속 주장했습니다. 어리바리한 나와 다른 친구들은 두 말이 다 맞는 것 같아 헷갈려 하면서도 녀석의 용감무쌍함과 선생님의 반응을 지켜보고 있는데, 우리들은 쉬운 문제도 틀린 녀석이 잘못을 시인하기는커녕 따지는 녀석에게 불호령이 떨어지리라 예상했는데 선생님께서는 오히려 입가에 엷은 미소까지 띠며 녀석을 혼 낼 생각이 전혀 없어보였습니다. 더구나 나중에는 슬며시 논쟁을 그만두고 싶어 하는 빛이 역력했습니다.
세월이 한 참 흐른 뒤에야 녀석의 주장을 부드러운 미소로 대응하신 이유를 알게 되었습니다. 선생님은 그 녀석의 당찬 기세를 꺾어 놓을 의향이 전혀 없으셨던 겁니다. 녀석의 당당한 주장에 오히려 흐뭇해 하셨고, 또 두 논리 각자의 가치를 당신의 미소로 인정하신 겁니다. 그러나 나는 그 문제를 아직도 명쾌하게 풀지 못하고 있음에 주의합니다. 어쩌면 제 인생이 끝 날 때까지도 모를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아무려면 어떻습니까. 이런 아련한 추억을 가지고 지금도 가끔 두 논리의 우열을 생각하는 명상의 시간에 빠지는 행복을 가질 수 있음에 감사드립니다.
선생님 !
뭐라고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의 감동과 기쁨으로 선생님이 마련하신 ‘마지막 수업’을 받으며 선생님은 마지막 순간까지도 당신의 제자들을 위하여 무었을 해줄 수 있을 것인가를 생각하신 것을 몸으로 느꼈습니다. 그리고 44년 11개월의 교직생활의 끝에 예 제자들을 불러 모아 마지막 수업을 하시는 선생님의 마음을 내가 얼마나 알 수 있을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선생님의 말씀대로 건강하게, 스스로의 책임으로, 후회하지 않을 삶을 살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선생님과 사모님 그리고 가족 모두가 내내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길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그리고 그 날 수업에 함께 출석하여 수업을 받았던 선후배님들께도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그렇게 귀하고 좋은 자리에 함께 출석하여 수업을 받은 것에 대하여 특별한 동지의식 같은 느낌까지 들었습니다. 추후 다시 만날 수 있을 날을 기대하며 그 때까지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길 빕니다.
끝으로‘마지막 수업’을 준비 해 주신 선생님의 가족과 분당중학교 선생님들과 교직원분들께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2006년 2월 12일 제자 김흥수 배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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