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쓴이 | kilshi [홈페이지] | 2016-07-23 08:02:22, 조회 : 756 |
제멋대로 읊는다
입은 말하지 않고 귀는 듣지 않은 지 오래지만
그래도 두 눈은 남아 또랑또랑 뜨고 있다.
어지럽고 시끄러운 세상만사
볼 수는 있어도 말할 수는 없구나.
浪吟
口耳聾啞久(구이농아구)
猶餘兩眼存(유여양안존)
紛紛世上事(분분세상사)
能見不能言(능견불능언)
조선 전기의 선비 삼가(三可) 박수량(朴遂良· 1475~1546)이 지었다. 그는 혼란한 연산군과 중종 시대에 지조를 지켜 고향 강릉에 물러나 살았다. 광기의 세상에도 권력과 부를 향해 정신줄 놓고 달려드는 사람들 많다. 세상이 미쳐 날뛸 때 그들과 함께 미친 척하고 나서야 한 자리라도 할 수 있을 텐데 그는 오히려 입도 귀도 닫아버렸다. 귀로 듣고 정직하게 말로 내뱉었다가는 자칫 큰코다칠 수 있어서다. 그렇다고 세상 몰라라 할 수 있을까? 눈을 벌겋게 뜨고 지켜보며 견뎌야 한다. 그는 광기와 폭압의 시대를 견디는 정신을 밝혀서 "내가 배움도 없으면서 진사에 급제했으니 욕됨이 없어 좋고, 땅도 없으면서 날마다 두 끼를 먹으니 굶주림이 없어 좋고, 덕망도 없으면서 산수에 머무니 속됨이 없어 좋다"라고 했다. 세 가지가 좋다는 '삼가'란 호는 그런 뜻에서 나왔다.
조선일보 ‘가슴으로 읽는 한시’에서
※내 고향 옛 우리집에서 멀지 않은 사천면 미노리에 ‘삼가봉’이 있고, 그 아래 박씨 집성촌 이 있었다. 이런 멋진 시인이 가까이에 있었던 것도 모르고……. 한 번 둘러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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