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쓴이 | kilshi [홈페이지] | 2014-10-16 10:50:17, 조회 : 624 |
다시는 소설을 잡지 않겠다고 했으면서 또 집어들었다.
2014년 노벨문학상 수상자 프랑스 소설가 ‘파트리크 모디아노’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다는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
도대체 어떤 이야기를 만들어 어떻게 썼기에 세계의 쟁쟁한 수많은 문학가들을 제치고…….
기억상실증에 걸린 주인공이 자신의 잃어버린 과거를 찾기 위하여 실낱같은 근거를 하나씩 더듬어가는 얘기였다.
한참 따라가며 읽다 보니, ‘이거 뭘 하고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기야, 내가 만일 기억상실증에 걸렸다 하더라도 분명 그보다 더 정신없이 과거를 더듬어 헤맸음에 틀림없었을 것이다. 자기의 과거가, 정체성이 얼마나 궁금할 것인가? 그런데 남이 그러고 있는 것을 보니, 잃어버린 과거를 찾아서 어쩌겠다는 건가?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지나간 과거를 찾는 일이 앞으로 살아갈 그의 인생에 무슨 도움이라도 된다면 모르거니와……. 차라리 그 시간에 다시 새로운 자기를 만들어 가는데 열중하는 것이 옳지 않겠는가? 자기에게 주어진 시간이 곧 다해 갈 텐데……. 더군다나 내가 그의 잃어버린 과거 얘기를 들여다보고 있는 것이 참 청승맞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도 중도에 그만두지 못하고 끝까지 다 읽었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주인공의 과거 찾기가 지루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읽고 나서도 여기저기 들치며 잘 짜여진 이야기 구성을 확인하며 감탄하였다. 다시 한 번 더 읽을까 하는 생각까지 하면서…….
우리가 현재를 산다고 하는 것, 정신없이 돈 벌고, 즐거움을 찾고 하는 것은 내일이 있기 때문이다. 내일에 대한 어떤 기대와 미래에 대한 소망이 있기 때문에 때로는 눈물을 흘리면서도, 숨이 턱에 닫는 어려움을 견뎌야 하면서도, 뒤집어지는 갈등을 괴로워하면서도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남은 일이란, 죽는 일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늙은이들은 내다볼 미래가 없으니까 어쩔 수 없이 살아온 과거나 곱씹고 있을 수밖에 없는 것이리라.
자신의 과거를 모르고선 한 발짝도 앞으로 나갈 수 없을 것 같아 끈질기게 찾는 것이겠지만, 잠깐 현재를 돌아보고 내일을 내다보면, 무슨 대단한 업적이라도 남기거나 한 적이 없는 아무 것도 아닌 사람-첫 문장이 ‘나는 아무 것도 아니다’였고, 실제로 추측컨대 평범한 양재사였을 듯한 사람-이, 시간과 열정을 들여 과거를 찾아가는 일보다는, 하다못해 내일 ‘앞산에 오르겠다’든지, ‘화분에 물을 줘야겠다’든지, ………, 하는 것이 삶을 살아가는 이유가 될 것이 아니겠는가?
주인공은 과거를 일부 확인했으면서도, 어떤 기록에 예전 자신의 주소지로 되어 있는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를 찾아갈 생각을 하며 소설은 끝나고 있다. 자기 과거에 걸쳐 있는 한 여인의 옛날 소녀 시절 사진을 들여다보며, “소녀는 멀어져간다. 그녀는 벌써 길모퉁이를 돌아갔다. 그런데 우리들의 삶 또한 그 어린아이의 슬픔과 마찬가지로 저녁 속으로 빨리 지워져 버리는 것은 아닐까?” 라고 하면서…….
읽을 만한 소설이었다. 그런 큰 상을 받을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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