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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전설이 되고 싶다.

최길시 2021. 10. 20. 08:40
글쓴이 김명기 [홈페이지] 2011-06-15 02:16:40, 조회 : 982

 

 

나는 전설이 되고 싶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늘 생각하지만, 이런 단어는 그냥 책이나 글귀에 있는 오래된 말로만 느껴졌다. 옛날 사람들이 술을 담다 오래 된 부대에 술을 담으니, 새 술에 예전 오래 된 술의 향기나 좋지 못한 맛 같은 옮겨져서 실패했던 경험 아닐까? 단지도 없이 부대에 술을 담을 정도면, 얼마나 오랜 경구일까? 간단하게 새 술은 새 부대에! 라고 남겨만 두어도 자자손손 술을 담글 때마다 양조 업자들은 그 말을 떠올리고, 어리석은 사람이라도 실패 없이 술을 담았겠지.

회사를 오래 운영할수록 ‘회사는 사람의 일이다.’ 라는 말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다. 나는 각 학교로 ‘찾아가는승마교실’이라는 사업을 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처음 있는 일이다. 처음 있는 일이니, 시행착오도 많이 겪었다. 다만 전체적으로 운영이 편하지 않은 승마장을 롤 모델로 한 사업이 아니기 때문에, 예전 공장 자동화 사업을 할 때 대기업에 납품하며 배운 경영기법을 많이 써 먹고 있다.

전체 직원들을 대상으로 Total safety management(전사적 안전 관리)를 실시해서 적지 않은 상금을 걸고 분임조 발표를 시킨다. ‘승마는 팔 다리 하나씩 부러트려 가면서 배우는 것.’ 정도의 말도 안 되는 안전의식을 가진 승마분야의 관행을 깨기 위해서다. 신입 사원들에게는 상황 극을 만들어 직접 시연하게 하면서 좋은 승마 선생님의 태도를 보여주고, 특히 재활승마의 상황 극은 재활승마에 반드시 필요하다. 장애인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신입 사원들이 단 한번만이라도 미리 경험하게 되면 현장에서 당황하는 일이 없는 것이다. 우리는 낙마가 거의 없다. 적어도 ‘6시그마 기준’에 맞도록 철저하게 관리한다.

마필은, 그 말이 오늘 어떤 행동을 했는지, 안전한지, 거칠어졌는지, 무엇을 얼마나 먹였는지, 누가 사료를 주었는지, 난폭해졌다면 누가 언제 어떤 훈련을 시켰는지, 그래서 그 말이 얼마동안 위험성이 없었는지, 혹시 다쳤다면 누가 어떤 치료를 언제 헸는지, 말 한 필에 관해서도 어지러울 정도로 완벽한 자료를 작성하고 매일 검토한다. 물론 어떤 승마장에서도 하지 않는 일이고, 보이지도 않게 많은 시간과 돈이 들어가는 일이다. 말이 이정도면 직원에 대해서는 더 볼 것 있겠는가?

직원들은 백화점 직원처럼 미소를 띠고 ‘솔’ 음으로 수강생들을 맞을 수 있도록 고객만족 교육 (Customer satisfaction)교육을 실시한다. 체육 강사에 대한 학부모님들의 걱정은 거친 언어나 욕설이다. 언제나 스승다운 언행을 해야 하고, 아이들에게 따스한 정을 나누어야 한다. 성범죄 경력 조회까지 철저히 함은 물론이다.

팀별로 수강 목표를 이루면 포상과 푸짐한 고급 뷔페 레스토랑의 회식이 따르고, 반대로 지각이라도 한 번 할라치면 사유서 써서, 팀장에게 결재 받고 그 팀의 지각 횟수는 꼼꼼하게 반영되고, 그 결과로 개인의 진급을 결정한다. 뒤처리 및 보고 절차가 귀찮아서라도 지각하지 말라는 것이다. 어쨌든 우리는 학교의 승마선생님들이다. 선생님들이 지각하고 결근하는 식으로 근태가 불분명하면서 누굴 지도한다는 것인가? 차라리 말을 잘 못타면 배우면 된다. 개인의 성실도와 근태는 어릴 때부터의 습관과 인성에 관한 문제이기 때문에 쉽게 고쳐지지 않는다. 규정 이상 지각이 반복되면 당연히 해고다.

이야기 하자면 길지만, 투자를 유치해 주겠다고 하여 간단한 사업계획서를 건넨 적이 있다. 당연히 그것은 거짓말이었고, 그 사업계획서가 우리와 비슷한 ‘찾아가는승마교실’을 4곳이나 만들게 했다. 그중 세 곳은 이미 문을 닫았다. 나는 우리가 해야 할 수업만을 했을 뿐이고, 그들의 사업이 시작되거나 끝나는데 어떤 관심도 가진 일이 없었다. 그런데 불과 석 달 전까지만 해도 별별 소문을 다 만들고 우리 직원들까지 술렁이게 했던, 3개 승마장 연합업체가 망한 것이다. 그들과 내가 같을 수는 없다. 나는 오리지널이다.

내 사업계획서를 빼돌린 사람이 사장이었다. 몇 군데 승마장을 연계하여 승마교실의 대형화를 계획한 모양이었다. 그동안 내가 들은 소문과 실상은 이렇다.

‘그쪽은 승마복을 백만 원어치 지급한대요.’
- 그냥 직원 개인의 빚으로 남았다.
‘월급이 엄청나고 사람을 무한정 채용한대요.’
- 첫 달엔 90만원, 둘 째 달엔 105만원, 셋째 달엔 110만원 주더니 내일부터 문 닫는다고 나가라더군요.

실제로 우리 회사에서 그쪽으로 슬그머니 옮아간 사람들도 있었다. 엄연히 동일계 회사 이직금지 규정을 어겼다. 그러나 소송을 하기도 전에 상대회사가 망해 버린 것이다. 그 사람들은 승마장을 전전하다가 우리 회사로 입사한 사람들이었고, 회사에서도 문제꺼리였었다. ‘그런 사람들을 데려가준다면 우리 회사를 굉장히 도와주는 일이다.’ 라고 농담을 했는데, 그게 맞아 떨어진 것이다. 나는 승마장에 몸을 담아 교관하던 사람들을 몇 명을 사원으로 채용했었다.

- 근태 자체가 불분명하다.
- 여자 친구와 헤어졌다고 학기 중에 사표를 내고 사라진다.
- 한밤에 오토바이를 타고 돌아다니다가 동네 불량배와 싸움을 벌이고 지구대에 끌려가기.
- 입사하지마자 여사원과 살림을 차렸다는 등 구설이 끊이지 않아, 알고 보니 전에도 바람피워 이혼 당했다는 것. 그 여사원과 함께 상대기업으로 함께 옮겨 갔으니, 그 기업이 온전할 리가 있는가?
- 또 그동안 사내에 수많은 헛소문을 옮긴 사람도, 알고 보니 그곳에 함께 갔단다. 이쯤 되면 오히려 내가 그 쪽 회사에 미안한 일이다.

반대로 그 망한 기업에서 이쪽으로 입사한 사원이 말한다. ‘근무시간이... 중간에 쉬지 못하고... 업무가 과중...’ 그래서 망한 것 아닌가? 여기는 업계에서 1등하는 곳이다. 그래, 여기서 희망을 보지 않고 노력하지 않고 불평만 한다면 자네는 어디로 가겠느냐? 월급 반만 받고 반만 일하는 데를 찾나? 자네는 자네 자신과 자네의 가족을 위해 뭔가 이루고 싶은 목표가 없나? 함께 수업한 팀장이 말한다. ‘뭔 사람이 힘이 하나도 없이 맥 풀려 있어요.’ 아하, 이래서 ‘새 술은 새 부대에!’로구나.

회사는 사원이 중요하지만, 사원도 회사가 중요한 것이다. 그 망한 회사는 직원 교육과 철저한 관리에서 실패한 것이다. 배울게 없어서 이쪽으로 옮긴다는 신입 사원이, 일한지 하루 만에 일이 너무 힘들다고 그만둔단다. 그럼 3년, 4년째 열심히 일하는 우리 여직원들은 뭐 툼레이더의 수퍼 걸 ‘안젤리나 졸리’ 쯤 되는 것인가?

자기 관리가 안 되고, 근태가 불분명하고, 앞날에 대한 포부가 없는 사람들을 모아 놓은 회사는 석 달 만에 망했다. 결국 회사는 사람을 키우는 곳이다. 회사는 그런 직원이라도 자기 관리를 하고, 근태를 제대로 하도록 지적하고, 앞날에 대한 포부를 갖도록 교육하고, 성장시켜야 한다. 사람이 제대로 성장해야 회사도 큰다. 그래서 ‘회사는 사람의 일’이고, ‘새 술은 새 부대에!’ 가 되는 것이다. 회사에서 직원들이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 이끌어 낼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우리 직원이 영원히 우리 회사에만 있으라는 법은 없다. 하지만 그가 어디에 있던 그가 배운 것들은, 이 사회의 좋은 양분이 될 것이다. 그게 내 일이다.

나는, 그들이 나와 함께 일한 것이 혹독하지만 자랑스러운 경력이 되기를 바란다.

나와 일할 때 얼마나 혹독했는지, 얼마나 지독했는지, 얼마나 고생했는지 무지하게 불평하고 원망할 것이다. 그래서 다들 얼마나 숙련되고, 성장하고, 이 분야의 전문가가 되어 우뚝 서게 되었는지. “야야 말도 마라, 그 양반이랑 일할 때 하루에 몇 번씩 들볶이고, 지시한 내용 몇 번씩 다시 확인하고, 새벽 한시에 갑자기 들이 닥치고, 호통에, 고함에... 그래도 그때가 좋았어. 얼마나 일이 핑핑 잘 돌아갔어? 모든 게 에프엠이지. 그 분야에서는 우리가 최고였잖아? 난 그 사람에게 일을 배웠다고 하니까 무조건 취업됐지.”

나는 그런 원망과 그리움이 뚜렷한 못된 상사로 남아, 애정보다는 경외의 대상이 되고 싶다. 당시에는 참 힘들고 싫었지만, 나이 들수록 그 꼬장꼬장함이 차츰 그리워지고 닮게 되는 애증의 대상. 나는 전설이 되고 싶다. 나와 함께 일한 사람의 사이에 이야기꺼리, 안주꺼리로 남고 싶다. 그게 내 개인적인 작은 소망이다.


www.allbaro.com

즈문마을에서...

PS: 내가 하려는 일에 대해 말했다. 내게 승마를 배운 의사 선생님이 문자로 답변했다.
[대장님이 하시는 일이면 올바르고 멋진 일이겠지요.]

참고로, 그는 느긋한 성격 때문에 나한테 여러 번 호되게 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