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쓴이 | 김명기 [홈페이지] | 2011-04-08 09:49:25, 조회 : 899 |
인생은 된장처럼...
젊은이들과의 시간은 늘 즐겁다. 나는 그들의 열정과 설렘에 늘 전이 된다. 나는 그들의 안쓰러운 고민마저도 소중하다. 그들은 나와 98% 같은 시간의 길을 걷는다. 언젠가 그들도 나이 들고, 후회하고, 때로 눈물을 지을 것이다. 인생은 일방통행으로 단호하다. 아무리 후회해도 도저히 되돌릴 수 없는, 그런 잔인한 일들도 있다. 그들의 미래는 나의 과거다.
고된 승마 훈련을 마치고 식당에 들렀다. 이 근동에서는 제법 맛 집으로 이름난 집이니 오늘 점심은 기대가 크다. 대학생 단원들도 마음이 가볍게 들뜬다. 만담홍소로 채워진 목조 한옥의 실내에 커다란 말 그림이 걸려 있다. 대략 80호는 될 것 같다. 나는 나도 모르게 중얼거린다.
저건 누가 그렸는지 모르지만, 제대로 된 그림이 아니야. 말의 다리들을 봐. 우리는 승마를 하는 사람이지만, 저런 모양새의 말 다리는 보지 못했지? 또 말 엉덩이를 봐. 저것도 작가의 상상이나 또는 잘 관찰하지 않은 결과야. 마치 사람 엉덩이처럼 그렸잖아. 게다가 말들의 표정은 마치 뭔가에 쫒기는 것 같기도 하고, 공포에 질린 것 같기도 하고. 어쨌든 작가가 누군지 말을 잘 모르는 사람이 그린 것이야.
내가 단언하자, 학생들도 여기저기서 자신의 소견을 말한다. 만약 이름난 화가가 그린 그림이라고 해도, 나는 내가 늘 함께 살고 있는 말들에 대해서는 언제 어디서든 말할 수 있다. 내가 본 것을 그대로 말하는 것이 뭐가 어려우랴. 뭐 그래서 늘 힘든 삶을 살았지만...
식사 중에 어떤 학생의 전공을 물었다. 그는 앞으로 도예가가 되고 싶다고 했다. 나는 슬그머니 미소를 지으며 그에게 다시 물었다.
그래, 요리는 잘 하니?
아뇨? 별로...
그는 별 것을 다 묻는다는 표정으로 어리둥절 한다. 실은 머릿속을 스치는 일이 있어 그에게 질문을 한 것이다. 몇 해 전, 숲 속에서 고난의 시간을 보낼 적에 한 도예가와 친분이 생겼었다. 당시 나는 알지 못했지만, 그는 상당히 유망한 작가였고, 일본 등에서 오히려 한국보다 더 이름이 났다고 한다. 나는 가끔 그의 흙집에 초대 되었고, 그가 만든 음식을 대접받았다.
그는 불을 기가 막히게 조절할 줄 알았다. 가마에 불을 넣어 도자기를 굽는 사람이니 불의 성질을 잘 알아야만 하겠지. 하지만 그는 그 불의 성정을 도자기뿐만 아니라 요리에까지 확장하여, 빠르고 간단하지만 불을 잘 머금은 요리를 낼 줄 알았다. 직접 재배한 싱싱한 야채들에게 찰나의 불을 넣어 그야말로 불 맛을 지닌 요리를 했다. 그 아삭이는 맛이란!
게다가 그는 직접 술을 담아 내놓기도 했다. 평생 술을 마셔 왔지만 그가 빚은 독특한 맛을 지금도 기억한다. 나는 지금 생각한다. 그가 만든 도자기들은 음식과 술, 또는 물을 담는 용도다. 실제로 그런 물질을 담지 않고 관상용이 될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도자기의 기본은 사람의 삶에 필요한 뭔가를 담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도자기가 담을, 그 대상까지도 공부한 것이다.
나는 내 앞의 젊은이에게 말했다. 도자기를 잘 빚기 위해서는 요리를, 또는 술까지도 알아야 한다. 그보다는 사람의 마음을 알고 그것마저도 담는 그릇을 빚어야 하겠지.
우리는 승마인이다. 말을 잘 타기위해서는 기술보다 말의 마음을 얻어야 한다. 말을 살피고 말의 기분과 감정, 나를 따를 준비가 된 것인가? 아니면 곧 반항해 낙마 시킬 것인가? 하는 것을 읽을 수 있어야 한다. 빠르게 승마술을 익혀 성급하게 달리는 사람들이 낙마사고를 일으키는 것은, 결국 말의 마음을 읽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나는 꼰대로써의 자세를 지키며 마무리를 했다. 알아들었을까? 알아들었겠지.
며칠 뒤, 그날 식사를 함께했던 학생들 중 한 명에게 이런 덧글이 올라왔다.
“엠티와 훈련이 끝나고 먹은 맛난 곰탕집에서 섹시한 엉덩이로 우리의 눈을 즐겁게 해주었던 그 말그림. 기억하시나요? 오늘 과제를 하던 중 우연히 발견했습니다. 그것은 이성계의 팔준마로써 동양의 명마로 꼽히는 스토리가 있는 그림이었어요. 우리가 본 것은 이 유명한 그림의 모방작이었던 듯합니다.”
이하 블로그 참조,
[조선을 개국한 이성계가 데리고 있던 여덟 마리의 명마입니다. 각각 횡운골, 유린청, 추풍오, 발전자, 용등자, 응상백, 사자황, 현표 등으로 여덟 마리의 준마라고 해서 팔준으로 불립니다. 이 여덟 마리의 말들은 모두 이성계가 조선을 개국하는데 공을 세운 말들로 특히 이 중에서 유린청은 이성계가 우라산성을 치고 해주에서 왜구를 물리쳐 승리했을 때 탄 말인데 31년을 살다가 죽었을 때 석조에 넣어서 땅에 묻어주었을 정도로 이성계가 가장 아끼던 명마였다고 합니다.]
내가 그림을 볼 줄 알면 얼마나 알겠는가? 그러나 인생은 된장처럼 숙성의 산물이다. 우리 삶에 대한 깊은 관심과 통찰 또는 방향성을 지닌 집중된 경험. 도자기가 불을 머금듯 우리 삶은 시간의 향기를 머금어야만 제대로 된 인생으로 익어간다.
어쨌든 나도 모르게 중얼거려 잘난 척해버렸던 거친 그림 평이, 다행히 많이 틀리지 않았다. 앞으로는 입단속을 더 해야겠다.
www.allbaro.com
즈문마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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