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쓴이 | 김명기 [홈페이지] | 2011-02-17 16:17:24, 조회 : 1,218 |
고약한 동창생
허참 고약한 일이야.
그게 무슨 말씀이신가요?
오랜만에 만나 뵌 회장님께서 혀를 차며 미소를 지으신다. 벌써 10여 년의 인연. 서로의 표정만 보아도 대략 이야기의 경중(輕重)을 가늠할 수 있다. 아마도 살아가면서 생겨나는 작은 접촉사고 같은 이야기들, 별 것은 아니지만 한 번쯤은 돌아보아야 할 이야기들 그 정도다.
고등학교동창이 있어.
아, 네.
그 친구는 후에 고등학교 교장이 되었지.
네.
그런데 그간 한 번도 동창회에 나온 적이 없었어. 동창들 경조사는 물론이고.
그랬군요. 저희도 그런 친구들 있습니다.
그런데 저번에 동창회에 나와서, 갑자기 딸이 결혼한다고 청첩장을 돌린 거야.
저런.
그게 내가 동창 회장이었을 때야. 나는 괘씸해하는 동창들에게 그랬지. ‘그동안 A가 뭔가 일이 많았겠지. 교장하려면 공부도 이만저만한 게 아닐 것이고. 그래서 바빠서 동창회에 못나온 것 일텐데, 이제라도 잃어버린 동창이 나왔으니 얼마나 좋으냐?’
역시 회장님이세요.
그래서 다들 축의금도 준비하고, 그 친구 딸 결혼식에 친구들 여럿이 다녀왔지.
오 잘 된 일이네요.
그런데 말이야. 그러고 나서 그 친구가 그 후로 한 번도 동창회에 안 나오는 거야. 다른 동창들 경조사에도 물론 모르쇠를 하고.
세상에 어쩌면 그럴 수가 있나요. 회장님 입장이 난감하셨겠네요.
맞아, 참 말도 못하고 입장이 난처했는데...
그런데요?
그 친구가 어제 동창회에 나온 거야. 이번엔 아들 청첩장을 가지고.
예에?
회장님은 미소를 지으셨고, 나는 뒤로 넘어갔다. 후안무치(厚顔無恥)도 그 정도 되면 챔피언 감 아닐까? 그렇게 아낀 돈으로 집안 형편은 좀 피셨을까? 연세들을 보아도 이제는 벗들이나 동창들과 음담패설도 좀 하시고, 10원짜리 고스톱도 치시고, 가끔 여행도 함께 하시며 즐거운 노후를 보내야 할 터인데...
오늘 문자가 왔다. 동창생 모친 별세다. 나는 그 동창생의 이름을 물끄러미 들여다보다가 다른 친구에게 전화를 건다.
B의 모친이 돌아가셨네. 자네 갈 건가?
15년 전쯤에 B의 부친이 돌아가셨을 때, 내가 따로 10만원을 들고 친구들 부조금까지 모아서 간적이 있었지. 그런데 그 후로 B는 단 한 번도 동창회나 경조사에 온 적이 없어. 나는 안 갈 거네.
그래, 나도 전에 그런 이야기를 들은 기억이 나서 자네에게 묻는 거야.
말하자면 원사이드 러븐데, 그런 짓을 왜 하겠어?
전화는 그렇게 끝났다. 나는 궁금하다. 그저 돈 몇 푼 때문일까? 동창이고 뭐고 살기가 바빴던 것일까? 그런데 왜 꼭 자기 필요할 때는 연락을 하지? B나 그 후안무치한 회장님의 친구 분 A씨의 두뇌는 어떤 구조일까? 이런 일은 어느 동창회나 있는 일인가? 어느 동창회는 총무가 회비 가지고 날랐다고 하고, 어떤 동창회에서는 이런 자가 한술 더 떠, 동창회 날 와서 자기 연봉이 얼마고, 집이 얼마고 자랑까지 했다던데...
결국 이런 일들은 살아가면서 생겨나는 작은 접촉사고 같은 어쩔 수 없는 일이겠지. 가만있자, 전국에 초등학교가 8,000개니까, 각 기수마다 1면이면 8,000명.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아니 70세 까지만 따져도 60배. 그럼 8,000명 * 60= 480,000명. 그럼 이런 고약한 동창생이 전국에 오십만 가까이... 헉!
나는 차 한 모금 머금으며 생각을 멈춘다. 그래봤자, 다 소용없는 일이 아니겠는가? 김명기, 너나 잘해라...
즈문마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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