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쓴이 | 김명기 [홈페이지] | 2011-01-08 22:54:05, 조회 : 1,304 |
음 혹시 뭔가를 드시고 계시다면 너무나 죄송합니다.
오늘 가까운 선배님께 뜻하지 않게 와인을 선물 받았습니다. 프랑스 보르도란 동네에서 태어난 4살 박이로군요. 야아~ 이건 너무 신나는군요. 흥이 나서 나름대로 신중하게 음악을 걸고 촛불로 분위기를 내고 한잔하려는 데, 아하! 안주가 없군요.
김치안주도 안 될거고, 무슨 국물안주도 안 될거고, 삼겹살도 문제가 좀 있지요? 족보가 괜찮은 붉은 포도주니까 필렛미뇽이나, 슈프림 칵테일에 샤또브리앙 스테이크 정도가 되어야 먼 곳까지 날아온 손님에 대한 예의일 것 같은데, 공허한 냉장고만 들여다보다가, 에이 다음에 마시지! 하구 치웠습니다. 역시 소주가 최고지요? 위에 열거한 모든 안주가 다 부담 없으니까요. 하면서 투덜거리다가 문득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그간 철학자 흉내를 내노라고 마음속에서 버려야 할 것들을 고민고민 정리하고 있었는데, 혹여 이런 것은 아닐까 하구요.
옛날 南蠻(남만)지역의 어느 나라에서는 죄를 지은 신하에겐 왕이 하얀 코끼리를 하사했다고 합니다. 너무 멋지고 관리에 비용이 많이 들어가는 보물 같은 동물이었답니다. 마침내 신하는 하얀 코끼리를 돌보느라고 파산하고 거지가 되고 그래도 그 코끼리를 끝까지 관리해야만 하는 엄중한 벌이었지요. 어려운 저에겐 고급 와인이 흰 코끼리군요. 안주타령을 하고 있었으니, 그냥 소주 마시면 될 것을...
지난해 봄 날씨가 사람을 가만히 앉아 있지 못하도록 부추기는 바람에 그걸 핑계로 등나무 바구니에 몇 가지 음식을 넣어 모란 미술관에 갔습니다. 기괴한(?) 조각품들을 둘러보고 실내 전시장에 들어섰을 때, 방금 먹은 식사가 다 올라올 지경이었습니다. 어떤 골 때리는 조각가가 소의 배설물에 무언가를 섞어서 커다란 작품을 몇 가지 전시해 놓았습니다.
어지간한 냄새는 참을 줄 아는 나이가 되었는데에도 이건 좀, 아니 너무 심했습니다. 몸에 밴 향기(?)가 한참을 가더군요. 그리고 나중에 생각했습니다. 세상에 둘도 없는 멋진 겉모습을 가진 작품이 나왔다면 이 작가는 어찌 했을까? 아니 所藏(소장)자는 무슨 수로 그 똥으로 만든 작품을 보관했을까? 아마 눈물을 흘리더라도 차라리 거름이나 되라고 버렸을 것 같습니다.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여인에게 빠진 친구가 있었습니다. 제가 보기에도 한눈에 반할 만한 여자이더군요. 좋은 학교에, 쭉쭉 빵빵 몸매에... 하지만 그 친구는 날이 갈수록 초췌해지고, 성 마른 듯 보였습니다. 하루 술이 취해 털어놓더군요. 항상 그 친구를 사랑한다고 말하면서도 늘 다른 남자친구들을 챙겨 놓는 여자라고요. 그 친구에게 안길 수는 있지만 결혼 할 수는 없다고 하고, 늘 챙겨주지 않으면 곧 다른 남자들이 득시글거린다 하더군요. 業報(업보)로다... 近墨者黑(근묵자흑)에 近朱者赤(근주자적)이라고들 합니다. 그 친구에게 스며든 좋지 않은 향기는 그후로도 꽤 오랫동안 가더군요. 버릴 때를 놓쳐버린 게지요. 아마 지금은 평온을 되찾은 것 같더군요. 그녀가 그 친구의 진정한 보물이 될 수는 없지 않겠어요?
중국에 여의라는 물건이 있습니다. 우리도 만사가 여의치 않다는 둥 하지요? 그게 알고 보니 효자손입니다. 예전에 어떤 신하가 임금에게 선물을 하여야 하는데 임금에게 없는 것이 있겠습니까? 그래서 고민 고민하다가 여의를 발명했답니다.
이젠 조금 명료해진 것 같습니다. 우리가 진정 행복하려면 곁에서 똥으로 만든 보물을 멀리하고, 하얀 코끼리가 제 영역에 들어오는 것을 적극 경계해야겠지요. 더더욱 경계할 것은 똥으로 만든 흰 코끼리. 하하하... 배고픈 돼지가 가장 심한 4등 아닌가요? 임금까지도 감동을 시키는 작은 행복과 즐거움, 여의와도 같은 소소하지만 명쾌한 기쁨을 일상사에서 되새기는 것이 제일 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아닌 줄 알면서도 버리지 못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또 미련 땜에 버리지 못하는 일이나 물건이 있습니까?
왜 자신을 그다지도 괴롭히세요? 털어 버리세요.
그건 똥으로 만든 보물이 아니면 흰 코끼리입니다.
여의 찾기 운동본부 도곡동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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