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쓴이 | kilshi | 2007-05-26 14:16:22, 조회 : 1,399 |
금아 피천득 선생님이 어젯밤에 세상을 떠나셨단다. 97년을 사셨다니 수(壽)를 누리셨고, 병원에서 숙환으로 돌아가셨다니 비명횡사의 안타까움도 없는데, 그렇다고 가까이 하기는 고사하고 한 번 뵌 적도 없는 내가 가슴이 뜨거워오고 눈자위가 젖어옴은 무슨 일인가? 나만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그랬을 것이지만, 그 분의 ‘인연’은 정말 좋은 글이었다. 교과서에 실렸기 때문에 가르치느라고 자연히 그렇게 되었겠지만, 아마도 수십 아니 백여 번도 넘게 읽었을 텐데, 읽어도, 읽어도 그 때마다 새롭게 스며오는 따스한 마음과 삶의 애틋함은 거칠어가는 마음을 적셔 주었다. 미사려구의 수식도 없이 잔잔히 써 내려간 그 글을 통해서 진솔한 그 분의 심성이 잘 나타나 있었다.
나도 그런 글을 쓰고 싶었다. 내가 수필을 좋아하고, 글을 쓰고 싶어하는 것도 그 ‘인연’과 ‘수필은 청자연적이다'로 시작되는 ‘수필’의 영향이 적지 않을 것으로 생각한다. 그 분의 말씀대로 천당에 가셨을 것이다. 명복을 빈다.
"죽어서 천당에 가더라도 별 할 말이 없을 것 같아. 억울한 것도 없고 딱히 남의 가슴 아프게 한 일도 없고…. 신기한 것 아름다운 것을 볼 때마다 살아 있다는 것이 참 고맙고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훗날 내 글을 읽는 사람들이 '이 사람, 사랑을 하고 갔구나' 하고 한숨지어 주기를 바라는 게 욕심이라면 욕심이죠. 그것도 참 염치없는 짓이겠지만…."
우주와 천국
To see a world in a grain of sand
And a heaven in a wild flower,
Hold infinity in the palm of your hand,
And eternity in an hour.
(William Blake, "Auguries of Innocence")
한 알의 모래 속에서 우주를 보고,
한 송이 들꽃 속에서 천국을 보네.
손바닥 안에 무한을 쥐고
순간 속에 영원을 담네.
(윌리엄 블레이크, “순수를 꿈꾸며”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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