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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백자(이화여대박물관)

최길시 2021. 10. 28. 08:29
글쓴이 kilshi [홈페이지] 2016-01-14 11:43:44, 조회 : 689

 

 

고려청자는 비색이 어떠니 상감이 어떠니 하고 글에서 보거나 들은 적도 많았고, 실제로 국보급 청자도 여러 번 볼 기회가 있었다(그렇다고 색깔과 상감의 아름다움을 감탄하지 않은 바는 아니다). 심지어 일본 시골(그곳이 어디였던가, 와카야마(和歌山県)나 미에(三重県) 어디였던 것 같은데)의 어느 개인 박물관에서도 거대한 상감청자운학매병을 보고 놀라움과 함께 묘한 상상이 스쳐갔고, 작년 여름에는 삼복더위를 무릅쓰고 강진 청자 축제에도 다녀왔으니까(청자축제라는 말에 사기당한 기분이 들었지만).

청자가 워낙 뛰어나서 그런가, 백자 예찬은 별로 들은 것 같지 않다-내 귀가 제대로 듣지 못해서 그런진 모르지만-. 들었더라도 스쳐지나갈 정도로 미미했을 것이다. 언젠가 어떤 글에서 한 번인가는 보기는 본 것 같고, 어쩌다가 전시회에 나오는 백자는 청자에 비해 수도 적고 작품 수준도 내 눈에는 별로였었던 것 같다. 언젠가 압구정 어디에선가 백자 달항아리 전시회에 기대를 가지고 갔었는데 어마어마하게 큰 놈도 있고 어떻게 만들었을까 할 정도로 동그랗고 귀여운 것이 있기는 했지만 내 감동이 터져나올 것 같지는 못했다. 그래서 내 마음속의 백자는 늘 초라하고 대수롭지 않은 관념으로 자리잡고 있었다.

신문에, 이화여대박물관에서 조선백자 전시회를 한다는 기사를 본 것은 여러 달 전이었다. 달력에 메모를 붙여놓긴 했어도 몇 달이 지나도록 밍기적댄 건 거리가 멀어 엄두가 잘 나지 않기는 했지만 솔직히 좀 무시하는 생각이 있었기 때문에 나갈 기회가 마땅찮으면 그만둬도…… 하는 약간 얍싸한 생각 때뮨이었다. 그런데 인사동에 나갈 일이 있어 가는 김에 잠깐 들러보려고 거기엘 먼저 갔다. 금방 둘러보고 점심은 인사동에서 먹으리라고 생각했는데, 푹 빠져서 1,2층을 느긋하게 돌면서, 안 갔더라면 정말 후회할 뻔했다는 생각을 했다.

모아놓은 작품의 규모도 상상 이상이었고, 어떻게라도 좀 만져보고 싶은 충동을 일으키는 작품들이 정갈하게 잘 전시되어 있었다. 더 좋았던 건, 이제 전시 마감 무렵이라 내가 전세를 낸 듯 관람객이 거의 없어, 내 감상 태도나 느낌에 어떤 염려나 방해도 받지 않고, 혼자 특별대우를 받는 것처럼 건방진 자세로 가까이 다가가 돋보기를 끼고 들여다보기도 하다가, 멀리 떨어져 지긋이 눈을 가늘게 뜨고 전문가 행세도 하면서 마음껏 감상할 수 있었다. 가장 가슴 뛰게 만들고 몇 시간이고 들여다보아도 사랑스러워 발걸음 돌리기가 끝내 아쉬웠던 것은, 학교 다닐 때 미술책인가 역사책인가에 실린 사진을 보며, ‘언제 실물을 한 번 봤으면 하던 바로 그 국보 107, 백자철화포도문호를 거기서 조우한 것이다. 청자는 근접하기가 어려운 어떤 고고함이 있다면 백자는 서민적이고 따듯하고 푸근한 맛이 있어 가질 수 있다면 옆에 두고 싶다는 욕구가 문득문득 솟구칠 정도로 친근한 그 무엇이 있었다.

연대를 5학기나 다녔으니 그 옆으로 일주일에 서너 번은 지나다녀야 했고, 그 부근에서 모임도 술자리를 가진 적도 적지 않았으면서, 언젠가 누가, 우리나라 최고의 여자대학 구경 가자, 가서 여자의 숲에 좀 빠졌다 오자고 꼬실 때에도, 총각 때라면 모르거니와 거길 침이나 흘리려고 가? 했던 그 이화여자대학에를 그 덕분에 발을 들여놓아 보았다. 구내에서 맛있는 점심도 먹고……. 그런데 옛날에는 버스를 타고 지나 보면 숲에 가려 그 속에 펼쳐지고 있을 치마의 펄럭임이 가슴설레게 했는데, 지금은 주위가 온통 아파트와 건물의 시멘트로 맥질된 황량함에 바람이 제멋대로 드나드는 듯하여 아늑한 캠퍼스 기분이 나지 않았다. -겨울이라 그랬던가?-

이달 말까지 한다니 감동을 실감하고 싶은 사람들은 꼭 한 번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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