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쓴이 | kilshi [홈페이지] | 2013-12-26 10:43:06, 조회 : 755 |
기척
한밤에 기침하면 어머니가 먼저 안다
잦으면 애가 쓰여 거실을 서성이고
사원이 보이는 쪽으로 두 손 모아 앉으시다
새벽을 일으키는 어머니의 묵상기도
영성의 맑은 피가 뇌혈관을 통해 오고
한 사발 따끈한 자애 잠긴 목이 풀렸으니
방에도 거실에도 어머니는 이제 없다
내가 기침해도 빈 여음만 쌓이는 집
창 너머 바랜 미소가 어둠 속에 상감(象嵌)된다
정해송(1945~ )
어느새 한 해가 저문다고 송년회로 들썩인다. 해 가기 전에 밥이라도 먹자고 새삼 뭉근한 인사들이 분주하다. 모두 수고했다고, 내년에는 더 힘내서 살자고, 묵은 감정 내려놓으며 어깨를 감싸기도 한다. 그런 가운데 지워야 할 이름도 간혹 나온다. 가까운 사람이면 한동안 삭제를 못 하고 전화나 수첩 한편에 그냥 두어본다. 그런데 어머니라면… 평생 못 지우고 가슴으로 부른다. 아니 더 뜨거운 눈물로 모신다.
어머니, 그 기도가 일으켜온 무궁한 새벽을 다시 보는 세모다. 어머니의 기도가 있어 세상이 이나마 덜 병든 운행을 계속하는 것 같다. 오늘 새벽도 세상의 많은 어머니가 말갛게 씻어 내보낸 태양으로 시작했을 것이다. 내일도 그러하리니, 어머니의 마음으로 대하면 세상은 한결 안녕하리라.
-조선일보 ‘가슴으로 읽는 시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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