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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란이 피기까지는' -김영랑-

최길시 2021. 10. 22. 10:26
글쓴이 kilshi 2012-03-19 08:18:41, 조회 : 881

 

 

모란이 피기까지는

김 영 랑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나의 봄을 기다리고 있을 테요.

모란이 뚝뚝 떨어져 버린 날

나는 비로소 봄을 여읜 설움에 잠길 테요.

오월 어느 날, 그 하루 무덥던 날,

떨어져 누운 꽃잎마저 시들어 버리고는

천지에 모란은 자취도 없어지고,

뻗쳐 오르던 내 보람 서운케 무너졌느니

모란이 지고 말면 그뿐, 내 한 해는 다 가고 말아,

삼백 예순 날 하냥 섭섭해 우옵내다.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기다리고 있을 테요, 찬란한 슬픔의 봄을.

 

이 시에는 다음과 같은 비화가 있었단다.

 

영랑은 1930년대 초 어느 봄날 생가 사랑채에 전국의 유명문인과 문인 지망생을 초청해 시 창작대회를 열고, 자신도 흐드러지게 핀 모란을 보고 시 한 편을 썼다. 하지만 그 시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지 시를 쓴 종이를 손바닥으로 구겨 쓰레기통에 버리려한 것을 춘원 이광수가 "왜 그걸 버려? 이리 줘?"하고 종이를 빼앗아 큰 소리로 낭송해 만장의 박수를 받았다. 명시 '모란이 피기까지는'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영랑은 첫 부인과 사별하고 일본에 유학하였는데, 사실은 음악을 하려고 했지만 '딴따라' 운운하는 부모님 반대로 어쩔 수 없이 영문학을 했다고 한다. 귀국하여 후에 세계적인 무용가가 된 최승희와 열애에 빠졌는데 양가의 반대로 결실을 맺지 못한다. 자살을 시도했으나 발각되어 실패하고, 곧 중매결혼을 한 뒤에 고향(전남강진)으로 낙향했다고 한다.

 

‘음악 공부’, ‘사랑’ 이런 소망을 뜻대로 펼치지 못한 영랑의 심정을 알고 이 시를 읽으니 ‘모란이 진 그 처절함’이 절절이 다가오지 않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