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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기의 목장통신'-마조제(馬祖祭)를 아시나요?

최길시 2021. 10. 21. 09:34

 

글쓴이 김명기 [홈페이지] 2011-11-22 12:04:21, 조회 : 1,098

 

 

[뉴시스아이즈]칼럼 '김명기의 목장통신'-마조제(馬祖祭)를 아시나요?
기사등록 일시 [2011-11-21 11:42:50]

【서울=뉴시스】2008년 8월6일 충남도청에서 마조제를 올리고 있는 국토대장정기마단 학생들. 2011-11-21


【서울=뉴시스】얼마 전 오늘의 소사(小史)를 뒤지다 ‘671년 10월6일 신라, 당군을 축출’이라는 짧은 문장을 보았다. 신라가 당나라를 물리치고 진정한 통일 국가를 이루었다는 기록이다. 이것은 말을 타고 이 땅의 산하를 달리던 화랑도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오늘의 한국이라면 과연 중국을 거절할 수 있을까. 역사는 반복되지만 개인적으로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고개를 젓는다. 어느 민족이든 마(馬)문화가 번성할 때 민족의 기운이 강성해지고 국운이 열렸다. 옛날 칭기즈칸의 몽골은 말할 것도 없고, 영국은 아직도 기병대가 있어서 국빈을 모실 때 마차를 이용한다.

미국 대통령이 휴가 때 크로포드 목장에서 승마를 즐기는 것은 이미 여러 번 보아왔고, 프랑스나 스페인의 승마학교는 전 세계에 유명하며, 독일은 세계 최고 수준의 말을 생산 수출한다. 마문화는 진정한 선진국과, 약간의 금권을 지닌 졸부국가를 나누는 경계선이 되기도 한다. 우리는 지금 어느 쪽인가.

우리 역사에 마조제(馬祖祭)라는 의식이 있다. 말들의 조상에게 올리는 제사다. 그렇다고 말을 신으로 모시고 복을 비는 구복신앙은 아니다. 오히려 말들을 위한 진혼곡이나 위령제에 가깝다. 우리민족의 말 사랑이 말을 위한 제사를 지내줄 정도였던 것이다. 우리 민족은 지난 5000년 동안 말을 타왔다. 마필은 국가의 국방과 교통, 정보통신의 주요 물자로서 나라의 근간을 이루는 인프라였다. 물론 취미나 사냥, 교통수단으로 타오기도 했지만, 말들의 제일의 존재 목적은 군사적 방어를 위한 군마(War horse)였다.

한때 우리나라는 약 5만 두의 마필을 지닌 아시아의 초강대국이었다. 이런 이유로 우리는 강대국인 중국과 평화를 유지하고, 공정한 무역을 했던 것이다. 만약 우리가 조금이라도 약해지면 중국은 가차 없이 우리에게 전쟁을 걸어왔다.

우리는 지난 5000년 동안 훌륭한 장수와 좋은 말로 한반도를 지켜왔다. ‘훌륭한 장수와 좋은 말’ 이 없었더라면, 우리는 지금쯤 중국이나 일본의 속국으로 전락했을 것이다.

마조제의 특이한 점은, 사람의 조상이 돌아가면 두 번 반절하지만, 마조제에서는 4번 반절을 한다. 마조(馬祖·天駟房星·말의 수호신), 선목(先牧·최초로 말을 기른 사람), 마사(馬社·말을 처음 탄 사람), 마보(馬步·말을 해롭게 하는 신) 이렇게 4신위에 절을 한다. 이중 가장 특이한 것은 마보라는 신이다. 마보가 말을 해롭게 하여 말들이 잘 놀라고 잘 다친다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우리 조상들은 말들에게 해코지 하지 말아달라고 기원했던 것이다.

마조제의 상차림 또한 평범하지 않다. 사람이 먹을 음식과 말의 음식이 함께 제사상에 놓인다. 말의 음식인, 소금, 죽순, 대추, 미나리, 멥쌀, 찹쌀, 수수, 수련과 열매(감), 마름열매 등이 놓이고, 사람의 음식인 사슴고기 절임, 토끼절임, 돼지 머리, 시루떡, 막걸리 등이 놓인다.

정통 마조제 상을 차리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우리 기마단의 대학생들은 일부러 눌린 고기, 시루떡 등을 넉넉하게 준비해서 마조제를 치른 다음, 모여든 일반 시민들과 나누어 먹는다. 평생 마조제라는 말을 처음 듣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지만, “그래? 이런 제사가 다 있단 말인가요?” 하는 탄성을 들으면서 함께 제사 음식을 나누는 순간은 정말 보람되다. 특히 2010년 인사동 야외무대에서 치른 마조제엔, 인근 파고다 공원의 나이 드신 어른들이 많이 모였다. 마조제는 앞으로도 어려운 사람들과 함께 하는 의미도 지닐 것이다.

마조제에 대한 기록은 삼국시대부터 있다. 말은 사람과 함께 피를 흘려 나라를 지킨 유일한 동물이다. 이런 까닭에 국가의 전란이나, 마필의 수출, 또는 중요한 역사(役事)가 있을 때마다 임금님이 친히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에 따라 현재 한양대학교 내에 있는 마조단(馬祖壇)에서 마필을 위한 마조제를 지냈다.

그러나 1884년(고종 21) 서울에 우정총국이 창설되어 현대화된 통신 우편 제도를 실시하게 되면서 경천역 등 전국의 역참 제도는 1895년(고종 32) 폐지되어 마필의 이용도가 현저히 낮아졌다. 게다가 국운이 기울자, 순종(純宗) 2년(1908년) 일제의 강제로 마조제를 폐지했다. 우리 민족의 유구한 역사와 함께 했던, 마필의 조상에게 제사까지 지내며 애정을 보였던, 국가의 중요행사가 까마득한 과거의 역사 속으로 잊혀 버린 것이다. 일제 강점기 이후 산업화와 고도성장의 시기를 거치면서 우리는 말과 마문화를 잊었다. 그 배덕(背德)의 결과로 현재 우리 승마산업이 그동안 이토록 지리멸렬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장구한 역사 속에서 1908~2008년까지의 100년간은 5000년 기마 역사의 50분의 1 정도로 그리 길지 않은 시간이다. 전 세계적으로 국민 소득 5000달러 시대에는 자가용, 1만 달러 시대에는 골프, 2만 달러 시대에는 승마, 3만 달러 시대에는 해양·항공 스포츠가 대중화된다고 한다. 이제 2만 달러 시대를 맞은 우리나라는 바야흐로 승마의 대중화 초입에 서있다.

승마문화와 산업은 2006년 정부의 말 산업 육성 정책과 2011년 말산업육성법에 의해 다시 희망을 맞고 있다. 생각해 보라. 밀실에서 인터넷 중독, 암기과목 위주의 배타적인 공부를 한 지도자와, 말에 올라 대자연을 달리며, 농촌과 동물을 사랑하는 호연지기의 청소년기를 보낸 지도자, 어느 쪽이 우리의 미래인가. 우리의 선택은 무엇인가. 어쩌면 승마의 대중화는 우리가 다시 융성한 아시아의 초강대국이 될 기회일지도 모른다. 예측 불허의 21세기의 소중한 인적자원으로, 민족의 올바른 미래를 위해 우리는 이 시대 패러다임에 맞는 지도자를 다시 육성해야 한다.

필자가 2002년 서울-목포 간 제1회 기마국토대장정을 기획할 적에 서울대, 고려대 학생들과 함께 우리 마문화를 돌아보기로 했다. 당시 한국교통사연구소의 조병로 박사(현 경기대 교수)의 적극적인 도움으로 마조제 자료를 받고, 한양대학교 도서관장의 자문으로 마조단 터를 발견해 제1회 마조제를 실시했다. 우리나라 마문화 연구의 태두(泰斗)인 한국마문화학회 회장 남도영 박사는 “내가 평생을 마문화 연구에 몸 바쳤지만, 실제로 이렇게 젊은이들이 뜻을 모아 뜻 깊은 마조제를 부활하니 이젠 여한이 없다”라고 눈물을 흘리며 기뻐하셨다. 글을 쓰다 보니 그때의 감동이 다시 어깻죽지를 따라 전율로 흐른다. 기마역사의 일부가 부활한 것이다.

한국국토대장정기마단은 이후 2011년까지 총 8번의 마조제를 치렀다. 한양대학교 마조단 터, 건국대학교 화양정 터, 충남 도청, 마로니에 공원, 공주 백제 무령왕릉, 인사동 야외무대, 부산 영도의 태종대 등 늘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에서 마조제를 지내왔다. 마문화가 다시 번성하고, 말 산업이 대중화되기를 바라는 뜻에서였다. 학생들이 용돈을 모아 기마국토대장정을 하며 거행하는 행사라 초라하고 부족하지만, 그래도 계속해서 마조제를 하다보면 언젠가는 이 마조제가 다시 국가의 중요한 무형문화제로 인정되고, ‘말이 우리 역사에 왜 중요한지, 말이 지난 5000년 동안 우리에게 해 준 봉사와 헌신이 무엇인지’ 일반 대중도 알게 될 날이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한국국토대장정기마단 훈련대장 allbaro1@naver.com

※이 기사는 뉴시스 발행 시사주간지 뉴시스아이즈 제253호(11월28일자)에 실린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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