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쓴이 | kilshi | 2010-09-11 11:00:12, 조회 : 1,140 |
아래 글은 법정스님의 상좌스님 중 한 분 이셨고, 현재 길상사 주지, ‘맑고 향기롭게’의 이사장으로 계시는 덕현스님이 ‘맑고향기롭게’ 9월호에 ‘이달의 법문’으로 실은 글을, 허락 없이 옮겨왔다.
자 문 (自 問)
德 賢
그대 살아가는 목적이 오로지 그대 자신과 모든 생명을 이 삶과 죽음의 고통에서 건지는 것이 되게 할 수 있는가? 오직 그 하나의 일을 위하여 먹고, 입고, 쓸 수 있는가? 가진 것 없이 맨발로 천하를 거닐 수 있는가? 한 발 한 발, 쓰러질 때까지 그렇게 걷고, 한 숨 한 숨, 마지막 숨까지 그렇게 들이쉬고 내쉴 수 있는가? 그리고 그뿐, 지나온 외로움에 눈물짓거나 길의 쓰라림에 후회하지 않으며, 스쳐온 중생들의 추루함을 깨끗이 잊을 수 있는가?
걸음걸음이 꿈길임을 알 수 있는가? 끝까지 갈 수 있는가? 끝없는 길을 갈 수 있는가? 부러진 다리를 버드나무 껍질로 동여매고 다시 사나운 말을 잡아탈 수 있는가? 목숨 걸어야 할 때 목숨 걸고, 무릎 꿇을 사람 앞에 무릎 꿇을 수 있는가? 한 사람을 만나 지난 모든 것을 잊을 수 있는가? 처자의 목을 베고 적진으로 갈 수 있는가? 모든 것을 참고 모든 것을 버릴 수 있는가?
다른 이들이 갈구하고 추앙하는 것들을 이미 지녔으되 어느 것 하나 붙들거나 소유하지 않고 나 무심히 그것들이 지나는 길이 되어 모두가 진정 필요한 이들에게 흘러가게 할 수 있는가? 얽혀 지냈던 긴 기쁨에 닻을 내리기보다 벗어나는 홀가분함과 날아오르는 가벼움을 날개 삼을 수 있는가? 뿌리내리는 집요함 대신 꽃의 향기로 피어나 보다 우아한 바람에 춤출 수 있는가?
말없이 돕고 흔적 없이 떠날 수 있는가? 웅크리고 잠든 자에게 이불을 덮어주고, 그대 자신의 일을 위하여 떠나기 전에, 힘든 일 마치고 지쳐 돌아올 이를 위하여 식탁을 준비할 수 있는가?
지금 피 흐르는 자신의 발에 난 상처는 그냥 딛고 가고, 고개 들어 다른 이의 오래 묵은 흉터에 입 맞출 수 있는가? 샘물처럼 편안히, 누가 오든 말든 마시든 말든, 맑고 찬 물을 끝없이 토할 수 있는가? 햇발처럼 오만하게, 구름이 끼든 말든, 지구가 구르든 말든, 누가 따뜻하건 말건 떠죽건 말건, 장렬하게 내리꽂힐 수 있는가?
가장 높은 것을 지향하고 그 정점에 설 수 있는가? 그대 정녕 부처의 이름을 지우고 불법을 멸하게 할 수 있는가? 만에 하나라도 그대가 그렇게 할 수 있다면 왜 그대의 그 높은 가능성을 버리고 돌보지 않는가?
왜 그 길로 나아가지 않는가? 정녕 그대에게 아직 많은 날들이 남아 있다고 믿는가?
우리의 근본 되는 스승은 무상사無上師이며 정등각자正等覺者. 그보다 더 높은 곳 없는 그 곳, 그러나 수많은 과거의 부처가 이미 이르렀고, 미래의 그 누구라도 다시 이를 수 있는 그 정상에 이르신 분.
그대 왜 그 봉우리를 향해 묵묵히 오르지 않는가? 한번 이르면 영원히 퇴전치 않는 불멸의 평안, 이르고 보면 본래 떠나온 고향이었던 기쁨의 경계 없는 땅을 두고 그대 왜 칸첸중가* 따위를 문제 삼는가?
그대 이미 진실되고 정확하게 그곳을 향해 길 떠났다면 한 걸음 한 걸음마다, 두리번 두리번 앞서간 사람의 발자국을 찾아 주춤거리지 않으리. 丈夫自由衝天志 不向如來行處行(장부자유충천지 불향여래행처행), 장부라면 저마다 하늘을 찌르는 기상 있으니, 부처님 가는 길이라 해도 따라 가지 않는다.
땀 흘러도 덥다 덥다 하지 말라. 그리 오래지 않아, 서릿발 달빛 아래 코끝 스치는 국화향이 그대의 오래 묵은 눈물샘을 바늘처럼 뚫으리라. 가라, 그리고 돌아오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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