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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겨울 저녁' -문정희-

최길시 2021. 10. 15. 07:41
글쓴이 kilshi 2009-12-07 15:28:22, 조회 : 905

 

 

초겨울 저녁

문 정 희

나는 이제 늙은 나무를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다 버리고 정갈해진 노인같이

부드럽고 편안한 그늘을 드리우고 앉아

바람이 불어도

좀체 흔들리지 않게 되었습니다

무성한 꽃들과 이파리들에 휩쓸려 한 계절

온통 머리 풀고 울었던 옛날의 일들

까마득한 추억으로 나이테 속에 감추고

흰 눈이 내리거나

새가 앉거나 이제는

그대로 한 폭의 그림이 되어

저 대지의 노래를 조금씩

가지에다 휘 감는

나는 이제 늙은 나무를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 이 시는 문정희 시인의 시집 『지금 장미를 따라』

(도서출판: 뿔, 2009)에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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