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쓴이 | kilshi [홈페이지] | 2016-04-30 10:03:33, 조회 : 608 |
황혼 무렵 홀로 앉아
황혼 무렵 홀로 앉아 무얼 그리 골똘한가.
지척에 임을 두고 안타까워 못 견디네.
달이 밝아도 밤 깊으면 천고의 꿈에 들고
꽃이 고와도 봄이 가면 남은 해를 수심에 젖네.
쇠나 돌이 아니라서 마음 어찌 진정하며
새장 안에 갇혀서 몸은 자유롭지 못하네.
세월이 날 등지고 벌써 훌쩍 떠나나 보다.
다리 아래 흐르는 물은 한 번 가곤 아니 오네.
偶吟
黃昏獨坐竟何求(황혼독좌경하구)
咫尺相思悵未休(지척상사창미휴)
月明夜沈千古夢(월명야침천고몽)
好花春盡一年愁(호화춘진일년수)
心非鐵石那能定(심비철석나능정)
身在樊籠不自由(신재번롱부자유)
歲色背人長焂忽(세색배인장숙홀)
試看橋下水東流(시간교하수동류)
19세기 초 여성 시인 죽서(竹西) 박씨(朴氏·1820 ~1851)가 지었다. 또 다른 호는 반아당(半啞堂)으로 생각이 있어도 드러내 말하지 못하는 처지를 비유했다. 말 못할 사연을 가끔 시로 표현하곤 했는데, 이 시가 그렇다. 지척에 그리운 사람이 있어도 만날 길이 없다. 달이 밝고 꽃이 고우면 무슨 소용인가. 때가 지나면 달도 꽃도 의미가 없다. 마음이 요동을 쳐도 몸이 자유롭지 못하니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내가 어찌 지내든 세월은 잘도 가겠지. 다리 아래 물은 세월처럼 아랑곳없이 흘러간다. 나만 홀로 남았다.
-조선일보 ‘가슴으로 읽는 한시’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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