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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중·고 동기동창에 직장까지

사천국민학교, 강릉사범병설중학교, 강릉사범학교의 동기동창에묵호국민학교에서 2년간 같이 근무했던 그야말로 찰떡같았던 인연이었다.1963년 3월에 헤어져 오늘 62년 여만의 해후.14년을 함께했던 그 사연이 저 푸른 바다보다도 깊었다. 거기에다 강릉은 한 다리 건너면 모두 친척이고 친구고 동료였기 때문에 둘의 주변에 있었던 인물도 이름만 대면, ‘아 그 사람, 지금 어디서 무얼 해?’하며 이야기가 끝날 수 없었다.올 때마다 무섭게 으르령거리던 파도도 오늘은 둘 다 보청기를 낀 둘의 대화에 방해될까 두려운지 소리도 내지 않고 모랫불을 핥고 있고, 저멀리 오리 십리 바위가 바라다보이는 경포 바닷가 모래 언덕에 앉아 해가 서산에 넘어갈 때까지 아련했던 사연들을 주고받으며 추억을 되살렸다.그리고 헤어져 나는 호텔에..

50. 걸으며 걸으며

50. 걸으며 걸으며 걷다가 걷다가힘들면버려야지한꺼번에 어려우면하나씩 둘씩이라도겹겹이 쌓인 산더미가슴을 누르고 있는 저 무거리들부는 바람에 낙엽 실어보내듯그 하나만 남겨두고 걷다가 걷다가서러우면잊어야지 얽힌 거미줄 같은 사연보푸라기 날려보내듯작달비 속 타향살이에 고향을 잊듯어젯밤 꿈의 파랑새도깨어보면 허공인 것을 그 한 가지만 기억하고 걷다가 걷다가가까워지면 지워야지잠시 왔다가취중에 낙서하듯 한 아프면 펄렁대는 일기장도세월에 바래도록 두지 말고검지에 침 묻혀서라도무언들 지워지지 않을까그날 그 사연은 남겨두고 걷다가 걷다가답답하면비워아지 끊임없이 출렁대며 넘치려는뚜껑도 열지 못해밑바닥에서 썩어가는이별주 막 잔 비우듯이미련없이살도 뼈도 다 털어공수거(空手去)라는데 걷다가 걷다가그래도 남았으면묻어야지차마 어쩔..

6·25 사변(事變)에 입은 은혜(恩惠)는 이제 - 아 아 잊으랴 어찌 우리 이 날을! -

신록의 계절 6월이다. 온 천지가 초록으로 덮여 아늑한데 그 위에서 초여름의 태양이 빛난다. 거리에 나서면 높은 빌딩숲은 질서 정연하고 잘 닦인 도로와 가로수 그늘은단정하여 사위가 평화롭고 안온하다. 거리를 지나는 사람들의 옷차림도 깔끔하고 모습도 훤칠하고 미끈하다. 한국사람이 본디 저렇게 잘 생겼었는데……. 뿐만 아니다. 요즘 문화와 산업 앞에 K가 붙은 말이 쏟아져 나와 세계로 넘쳐흐른다. 우리나라가 이렇게 잘 살게 되었구나! 그 위대함에 감탄하여 가슴이 벅차오르는데,6월이 돌아오면 저 밑바닥 아래에서 되살아나는 6·25 사변의 참혹과 어렵던 우리 세대의 어린시절! 1950년 6월 25일 일요일 새벽. 사기막(강릉시 사천(沙川)면 사기막)으로 공비토벌 나갔다며 한동안 집에 들어오지 않던 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