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 사임당.
글쓴이 | 권오익 | 2009-03-13 21:12:26, 조회 : 1,464 |
申 師任堂.
5만 원 지폐에 신사임당의 초상이 실릴 모양입니다.
솔직한 나의 생각은 과연 신사임당이 5만 원 권 지폐에 실릴 그 정도의 인물인가? 하는 의구심은 있습니다.
뭐 신사임당하면 賢母良妻의 대명사로 후대사람들의 뇌리에 각인되어있습니다만.
賢母는 몰라도 良妻는 아니지 않나요?
그냥 제 생각입니다. 오해는 금물.^^
며칠 전 江陵崔氏 종친회에서 화폐도안의 신사임당 초상이 엉터리다, 하며 역정을 냈다는 보도를 봤습니다.
순간, 신사임당의 본가인 平山申氏 문중도 아니고 시가(媤家)인 덕수(德水)이씨 문중도 아닌 강릉최씨 문중에서
왜 저러나? 했는데 사임당의 외할머니가 강릉최씨 군요.
아무튼 강릉사람들의 특별한 혈연의식을 드러내는 재미있는 장면입니다.^^
그제야 나도 관심을 갖고 도안 사진을 보게 되었는데
괜찮던데 왜 그러는지 모르겠어요.
오히려 지금까지 내려오던 초상화보다 새로 그린 초상이 더 품위 있어 보이고 단아해 보이던데...............
그런데 기생이미지가 난다고 그러시니, 거참.
물론 사람마다 어떤 사물을 보고 느끼는 감상이 틀리겠지만
사람 얼굴모습을 보고 느끼는 감상은 대게 비슷하지 않나요?
김 태 희나 장 동건 이나 이민호(구 준 표)보고 전부 미남, 미녀라고 인정하듯이 말이죠.
예전에 牙山 顯忠祠에 걸어놓을 충무공의 초상화를 그릴 때도 사회적 여론이 분분했나 봅니다.
李舜臣 모습에 대한 기록이 전혀 없는 상황에서 과연 어떻게 그리는 것이 민족의 영웅인 충무공의 진가를 보이는가
하는 고민이었겠죠?
이순신 모습에 대한 기록이 유일하게 남아있는 게 이순신의 친구이자 후견인인
당대의 정승 柳成龍의 <징비록懲琵錄>인데 거기에 이순신의 모습을 간단명료하게 “사람이 어질다.” 라고
표현해 놓은 게 전부였다고 합니다.
그걸 토대로 날카로운 군인의 모습이 아닌 선비의 모습을 지닌 따뜻한 풍모로 그리려 했다는
작가의 후일담이 있더군요.
후덕한 현모양처의 모습이 따로 있고 기생의 모습이 따로 있겠습니까? 만은
같은 핏줄이니 이왕이면 좋게 보이는 모습을 기대 하는 거야
후손된 자들의 당연한 마음이라고 봐야겠죠.
다만 편견은 금물입니다.
사실 신사임당하면 강릉에 있는 안동권씨 와도 인연이 깊습니다.
사임당의 친정 엄마(용인이씨)는 딸 4명을 두었는데 사임당은 둘째입니다.
유산을 남기면서 사임당에게는 서울집을 주고 넷째 딸의 아들인 권처균에게는
묘소를 돌보라는 유지와 함께 지금의 오죽헌을 물려줍니다.
즉, 권 처균에게 사임당은 이모이고 율곡과는 이종4촌간입니다.
그런 연유로 오죽헌은 350년간(1975년까지)안동권씨 추밀공파 강릉파(죽헌파)
종가 집으로 내려왔으며 지금도 사임당의 친정부모 시제를 권씨 강릉종가에서 지내고 있습니다.
(종손이었던 故권용만교수의 부인인 한국 예림회 강릉지회장인 최승임여사가.)
문득 사임당의 목소리가 귓전에 울립니다.
“ 그렇다면 자네도 나와 전혀 인연이 없다고 말하지 못할진대
그걸 잘 아는 놈이 나에 대해 현모는 몰라도 양처는 아니지 않냐고?
버르장 머리없이 그런 근거 없는 얘기로 나를 폄하 하는 이유가 뭔가?”
“죄송합니다. 그건 아니 구요.
난 그저 어르신께서 서울 시댁에 가지 않고 너무 오랫동안(17년)
강릉 친정에 머물며 며느리나 아내로서의 본분을 망각한 것 같아서요.......
사실 요즘에 그렇게 하면 백번도 더 이혼당하거든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