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역사(12.8)
글쓴이 | kilshi | 2008-12-08 17:00:57, 조회 : 926 |
오늘의 역사 (12월 8일)
[1977년] 14년 만에 쌀막걸리 제조 허용
1977년 쌀 자급자족이 이루어진 직후 쌀막걸리 양조가 허용되었다.
농수산부가 1977년 12월 쌀 수확량을 4천1백70만6천섬으로 최종집계, 발표했다. 이는 전년보다 15.2%, 평년작에 비해 35.3%가 증가한 양이다. 정부 수립이후 최대 풍작이었다. 그러나 쌀 재고량이 정부미 680만섬, 민간보유 550만섬 등 1,230만섬에 달해 농촌 쌀값이 정부수매가(80kg 정곡기준 가마당 2만6천2백원) 이하로 떨어져 생산농민의 의욕을 떨어뜨렸다.
이처럼 추곡(秋穀)이 대풍을 이룬 것은 1971년 다수확 신품종인 통일벼가 농가에 보급되기 시작했고, 이와 더불어 영농기술이 크게 향상됐기 때문이었다.
1974년 이후 연속 대풍으로 쌀을 완전 자급하게 되자 정부는 지금까지의 쌀 소비억제책을 크게 완화, 1월 무미일(無米日)을 철폐하고 12월 8일에는 지난 1963년부터 금지해 온 쌀막걸리 생산을 허용했다.
1960년대 초까진가, 그 때 시골에서 농삿일이 시작되면 집집마다 농주(農酒)로 불리던 막걸리를 해 넣었다. 농사철이면 어느 집을 가더라도 텁텁한 막걸리 한 사발쯤 얻어 마실 수 있었는데, 집집마다 손맛이 달라 각기 독특한 맛을 자랑했었지.
그러다가 일반 가정의 밀조주 제조를 엄격히 단속하면서(심지어는 과일로 과일주를 담는 것도 적발되면 벌금을 엄청 물었다던데), 양조장에서는 쌀 대신 밀가루로 막걸리를 만들도록 법을 만들어, 농주는 고사하고 쌀막걸리조차 먹을 수 없게 되어, 막걸리 대신 소주가 가까워지게 되었지. 5.16 후의 혁명정부에서 그렇게 했던 것 같은데, 식량의 쌀도 모자라는데 술을 쌀로 만드는 것도 그렇고(학교에서는 보리밥 혼식 장려를 위하여 도시락 검사도 엄격했었는데), 주세(酒稅)를 확실히 걷어 국정에 보태기 위함이 아니었나 생각되네.
요즘 옛날의 그 농주는 아니지만, 양조장에서 만드는 쌀막걸리도 제법 먹을 만하여, 나는 가끔 집에서 술이 마시고 싶으면 막걸리를 사다 마시곤 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