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부 도' -이재무-
글쓴이 | kilshi | 2008-11-17 08:08:01, 조회 : 861 |
<한국인이 애송하는 사랑시 [48]>
제 부 도
- 이 재 무 -
사랑하는 사람과의 거리 말인가
대부도와 제부도 사이
그 거리만큼이면 되지 않겠나
손 뻗으면 닿을 듯, 닿지는 않고,
눈에 삼삼한
사랑하는 사람과의 깊이 말인가
제부도와 대부도 사이
가득 채운 바다의 깊이만큼이면 되지 않겠나
그리움 만조로 가득 출렁거리는,
간조 뒤에 오는 상봉의 길 개화처럼 열리는
사랑하는 사람과의 만남 말인가 이별 말인가
하루에 두 번이면 되지 않겠나
아주 섭섭지는 않게 아주 물리지는 않게
자주 서럽고 자주 기쁜 것
그것은 사랑하는 이의 자랑스러운 변덕이라네
(2007)
(해설)
사랑은 수렁이다. 빠지면 황홀은 물론 고통도 함께 온다. 이재무(50) 시인이 발견한 사랑은 '제부도와 대부도 사이의 거리와 깊이'. 그것은 수렁이며, 수평과 수직이 따로 없이 서로에게로 휘어질 수 있는 어떤 '사이'다. 시의 제목은 〈제부도〉지만 제부도만으로는 성립되지 않는, 대부도가 있어야만 하는 이 시에서 혼자만으론 완전해질 수 없는 결여를 채우는 것은 밀물과 썰물이 드나들 수 있는 빛나는 사이인 것. 이 '사이'에선 인간의 언어가 구사하는 모든 대립항들이 원초적으로 뭉개지며 얽힌다. 이 얽힘, 이것이 사랑이다. 제부도와 대부도 사이처럼, 마주 선 당신과 나 사이 한 발짝만큼의 거리에서 태평양이 숨쉬기도 하고 우주가 숨쉬기도 한다. 어떻게 그럴 수 있지? 그것은 '사이' 때문. 사람과 사람 사이처럼 사랑에도 '사이'의 비밀이 있어야 오래도록 가슴을 덥히는 사랑의 추억을 가질 수 있다.
이 시는 이재무 시인의 연시집 《누군가 나를 울고 있다면》에 들어있다. 지천명의 나이에 펴낸 이 시집 속엔 솔직하고 열정적인 사랑의 고백과 희구가 가득하다. 제부도와 대부도 사이는 다른 시에서 이렇게 노래된다. '더 이상 비밀이 없는 삶은 누추하고/ 누추하여라 사랑하는 이여, 그러니/ 내가 밟아온 저 비린 사연을 다 읽지는/ 말아다오 들출수록 역겨운 냄새가 난다'(〈비밀이 사랑을 낳는다〉 부분)
이재무에게 '비밀'의 탄생은 추억을 거쳐 온다. 그는 책상 앞에서 상상하는 사람이 아니다. 그의 시들은 대부분 자신의 경험에 바탕을 두고 있다. 시인은 이렇게 전한다. 서른 중반 한 여학생과 열애에 빠진 적이 있는데 그녀를 끔찍하게 좋아했지만 도덕과 인습 때문에 사랑의 감정을 현실화하진 못했다. 학생과 선생으로 만난 데다 나이 차가 많았기 때문. 고통스러웠지만 그는 결국 그녀를 떠나보낸다. 그 후 일 년이 지난 봄날 제부도에 가게 되었다. 봄이었지만 썰렁한 마음의 방에 여태도 추운 추억이 누워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바다의 겹 주름처럼 회한이 밀려오고 뒤늦은 마음이 당도했다. 다시 사랑이 찾아온다면 제부도와 대부도의 그 간격으로 사랑하리라는. 그러니까 이 시는 찾아온 사랑 때문에 지어진 것이 아니라 떠나버린 사랑의 회한 때문에 지어진 것이다.
그는 조심스럽게 고백한다. 살아생전 언젠가 그녀를 다시 만날 수 있다면 제부도가 보이는 음식점에 들러 칼국수 한 그릇 뜨겁게 나눠 먹고 싶다고. 제부도와 대부도 '사이'로 들어오는 밀물아 썰물아, 들어다오.
1994년 11월 17일, 김영삼 대통령이 시드니에서 ‘세계화 선언’을 했다고 하는데, 그러고 10여년의 세월이 흘러 이제는 세계가 한 동네, 한 시장통이 된 모양이다. 미국의 모기지사건 때문에 세계 경제가 모가지가 비틀려 곧 숨이 넘어갈 지경까지 되었으니…. 옛날 같으면 미국 경제가 어떻게 되든 무슨 상관이었겠나.
세계화되었다 해도 받아들이는 사람마다 다르겠지. 어떤 사람은 아직도 제집 마당 안에서만 놀고 있고, 어떤 사람은 이미 세계를 넘어 우주를 넘나들고 있지만, 각자의 사는 방식과 행복 추구는 서로 다를 테니까……. 어떻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이라고 단정할 수야 없겠지. 사람의 일생이란 기껏 백년인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