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수업』초록(抄錄) (4)
글쓴이 | kilshi | 2008-09-04 19:23:49, 조회 : 952 |
4. 상실과 이별의 수업
당신이 아름다운 정원에 앉아 있다면 당신은 아무 것도 배우지 못한다. 그러나 만일 당신이 고통 속에 있다면, 만일 당신이 상실을 경험한다면, 그리고 만일 당신이 머리를 모래에 묻는 것이 아니라 그 고통을 아주 특별한 목적으로 당신에게 주려는 선물로 여긴다면 당신은 성장할 것이다.
박사과정을 끝마쳐가는 한 심리학과 학생이 할아버지의 병환 때문에 걱정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자기를 길러주신 할아버지가 이대로 돌아가실까 봐 무척 염려했습니다. 졸업을 얼마 앞둔 시점에서 휴학을 하고 할아버지와 좀 더 많은 시간을 보내야 하는지도 고민 중 하나였습니다. 하지만 그는 이 마지막 학년에 많은 것들을 배우고 있었기 때문에 이번에 학업을 끝마치고 싶은 마음도 있었습니다. 그는 나(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에게 말했습니다. ‘지금 학교에서 배우는 것들은 제가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성장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되고 있어요.’ 나는 그에게 말했습니다. ‘진정한 인간으로 성장하고 싶다면, 이 우주가 당신을 상실이라고 하는, 인생의 박사과정에도 등록해 놓았음을 깨달아야 해요.’
결국 우리는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을 잃게 됩니다. 하지만 진정으로 중요한 것은 결코 사라지지 않습니다. 이 세상이 하나의 학교라면, 상실과 이별은 그 학교의 주요 과목입니다. 상실과 이별을 경험하면서 우리는 필요한 시기에 우리를 보살펴주는 사랑하는 이들, 또는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들의 손길을 자각하기도 합니다. 상실과 이별은 우리의 가슴에 난 구멍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다른 사람으로부터 사랑을 이끌어내고, 그들이 주는 사랑을 담아둘 수 있는 구멍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이미 우리를 창조해 낸 완벽한 세계인 어머니의 자궁으로부터 떨어져 나오는 상실을 겪으며 이 고통스런 세상에 태어났습니다. 어린 시절 언제나 누군가의 품에 안겨있던 우리는 갑자기 땅 위에 홀로 서야 할 순간을 맞습니다. 나이가 들면서 친구들은 우리의 곁은 떠나가며, 가지고 놀던 장난감은 부서지거나 사라지며, 첫사랑과는 결국 헤어지게 될 뿐입니다. 하지만 이런 일련의 이별들은 겨우 시작에 불과합니다. 한 해 한 해 흘러갈수록 우리는 선생님을 잃고, 친구들을 잃고, 어린 시절의 꿈을 잃습니다. 우리가 갖고 있던 모든 것들은 잠시 빌려온 것에 불과합니다. 현실은 영원하지 않으며, 우리가 갖고 있는 것들에 대한 소유권 역시 영원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마치 삶이 영원한 것처럼 가장합니다. 궁극적인 상실인 죽음을 똑바로 바라보려고 하지도 않습니다. 많은 불치병 환자들이 자신의 가족에게 이렇게 당부합니다. ‘내가 죽어간다는 걸 숨기려 하지 말아요. 살아있는 모든 것들이 내가 죽어간다는 걸 일깨워주고 있는 걸 모르겠어요?’ 죽음을 앞 둔 사람은 자신이 무엇을 잃어가는지 알고 있으며, 그 가치를 이해합니다. 자신을 속이는 것은 살아있는 사람들입니다.
한밤중에 고통으로 몸부림치다 깨어났을 때 나(데이비드 케슬러)는 죽음을 느꼈습니다. 처음 통증을 느낀 순간부터 그것이 심상치 않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의사에게 진찰을 받으러 갔더니. 소화제를 처방해 주며 좀 더 지켜보자고 하였습니다. 그로부터 사흘이 지나 목요일이 되자, 통증은 더 악화되었고, 의사는 정밀 검사를 해 보자고 하였습니다. 그날 하루 동안 병원에 입원해 몇 가지 검사들을 받았는데, 위에 이상이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내시경 검사도 했습니다. 회복실에서 의사는, 장 입구를 부분적으로 막고 있는 종양을 발견했다고 하면서, ‘조직을 떼어 검사실로 보냈으니 며칠 뒤 결과가 나올 겁니다.’
종양이 발견되었다고 해서 반드시 악성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결장암으로 돌아가신 아버지의 얼굴이 떠오르는 것을 어쩔 수 없었습니다. 나흘 동안 검사 결과를 기다리면서, 젊음과 건강, 그리고 마침내는 삶을 잃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슬픔에 잠겨 있었습니다. 종양은 양성으로 판명되었지만, 그 며칠 동안 느낀 상실감은 정말 잊을 수가 없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삶이 곧 상실이고 상실이 곧 삶이라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 채 평생 상실과 싸우고 그것을 거부합니다. 상실 없이 삶은 변화할 수 없고, 우리도 성장할 수 없습니다. 옛 유대 격언에 ‘많은 결혼식에 가서 춤을 추면 많은 장례식에 가서 울게 된다.’는 말이 있습니다. 당신에게 친구가 많다면 그만큼의 이별을 경험하게 된다는 뜻입니다. 상실에는 부모의 죽음 같은 큰 것도 있고, 메모지를 잃어버리는 것 같은 작은 것도 있습니다. 죽음처럼 영원한 것도 있고, 출장을 갈 때 아이와 떨어지는 일시적인 것도 있습니다. 상실의 과정에서 사람들이 보이는 다섯 단계의 반응은, 삶에서 겪는 모든 크고 작은 상실에 공통적으로 나타납니다. 당신이 콘택트렌즈를 잃어버렸다고 가정해 봅시다. 당신은 다음과 같이 반응할 것입니다.
첫 번째, 부정입니다.
‘내가 그걸 떨어뜨리다니, 믿을 수 없어.’
두 번째, 분노입니다.
‘젠장, 좀 더 조심했어야지.’
세 번째, 타협입니다.
‘렌즈를 찾게 된다면, 앞으론 훨씬 더 조심할 거야.’
네 번째, 절망입니다.
‘그걸 잃어버리다니, 너무 아까워 견딜 수 없어. 새 것을 사야 하잖아.’
그리고 다섯 번째, 수용입니다.
‘괜찮아. 어차피 언젠가는 바꿔야 하는데 뭐. 내일 아침에 새 렌즈를 맞춰야겠어.’
상실에 대해 이 다섯 단계를 모두 거치지는 않으며, 항상 순서대로 나타나는 것도 아닙니다. 또는 한 단계를 반복적으로 겪을 수도 있습니다. 상실을 경험했을 때 그 반응은 사람마다 다릅니다. 상실은 우리에게 공허함과 무기력함, 분노 ,슬픔, 두려움, 등의 감정을 남깁니다. 이런 단계들을 거치는 것이 치유의 과정입니다.
분명하게 말 할 수 있는 한 가지는 시간이 모든 것을 치유하리라는 사실입니다. 치유 과정은 롤러코스터를 타는 것과 같지만, 결국 당신은 치유될 것이며, 온전한 자신을 되찾게 될 것입니다. 잃어버린 것을 되찾지는 못하겠지만, 그 상처를 치유할 수는 있습니다. 상실은 삶이 우리에게 던지는 가장 어려운 배움 중의 하나입니다. 상실이 없이는 성장도 없습니다. 이 개념을 가장 잘 설명해 주는 것은, 일찍 자식을 잃은 부모들입니다. ‘열렬히 사랑하고 헤어지는 것이, 한 번도 사랑하지 않는 것보다 낫다’는 걸 배웠습니다. 상실로 인해 고통 받은 적이 있는 사람은 결국 더 강해지고, 더 온전한 존재가 됩니다. 소유하던 것을 잃은 슬픔이 가시고 나면 자신이 좀 더 자유로워지고 세상을 가볍게 여행할 수 있게 됨을 깨닫습니다. 무엇을 상실하였을 때 비로소 자기가 잃어버린 것이 얼마나 소중한 것이었는지 깨닫게 됩니다.
상실이라고 하면, 우리는 대개 목숨, 가정, 돈과 같이 중요한 것들을 잃는 경우를 떠올립니다. 하지만 상실의 배움을 통해 하찮게 여기던 것들이 얼마나 중요한 것이었는지 깨닫게 됩니다. 이혼이나 별거를 통해 헤어짐을 경험한 사람들은 종종 죽음이 궁극적인 상실이 아님을 깨달았다고 말합니다. 그 사람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걸 알면서도 함께할 수 없다는 것은 죽음으로써 영원히 헤어지는 것보다 훨씬 더 고통스럽고 견디기 힘들다고 말합니다.
의학적으로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사람들로부터 다음의 공통된 점을 배울 수 있습니다. 첫째, 그들은 한결같이 더 이상 죽음이 두렵지 않다고 말한다는 것입니다. 둘째, 그들은 이제 죽음이란 필요없어진 옷을 벗는 것처럼 육체를 떠나는 것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셋째, 그들은 죽음 속에서 온전한 자신을 느꼈고, 자신이 모든 사물, 모든 존재와 연결되어 있음을 느꼈습니다. 마지막으로 그들은 절대 외롭지 않았으며 누군가가 자신과 함께 있음을 느꼈다고 말합니다.
상실만큼이나 힘겨운 것은 상실을 겪게 되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입니다. 흔히 환자들은, ‘건강이 회복되지 않을 거라면 차라리 죽어버릴 거야.’ 라거나, ‘검사 결과가 나오기를 기다리는 것이 힘들어 죽겠어.’하고 이야기 합니다. 재결합을 시도하고 있는 한 부부는 ‘별거하고 있는 지금 상황이 정말 죽을 맛이에요. 이 일을 빨리 해결하거나, 아니면 아예 끝장을 보는 게 나을 것 같아요.’하고 불평합니다. 삶은 때로 상실을 겪게 될지 모르는 불확실성 속에서 우리를 살게 만듭니다. 검사 결과를 며칠씩 기다리거나, 병과 싸우는 모습을 무한정 지켜보거나, 실종된 아이를 불안한 상태에서 기다려야 하는 수도 있습니다.
아버지에 대한 기억을 나(데이비드 케슬러)는 한 순간도 잊은 적이 없습니다. 아버지와 그 손목시계는 언제나 내 유년의 기억의 일부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아버지는 내가 그 시계를 무척 좋아한다는 걸 아셨습니다. 아버지의 임종을 앞두고, 나는 아버지 곁에 앉아 눈물을 글썽이며 말했습니다.
‘아버지에게 어떻게 작별 인사를 해야 할지를 모르겠어요.’
아버지는,
‘그건 나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너를 포함해 모두에게 작별 인사를 해야 한단다. 어젯밤에는 창밖의 별들에게도 작별 인사를 했다.’
그리고 시계를 가리키며 말씀하셨습니다.
‘내 시계를 좀 벗겨 주겠니?’
‘됐어요. 아버지. 아버진 항상 그 시계를 차고 계셨잖아요.’
‘그렇지만 이젠 시계와도 작별을 해야 할 때가 왔구나. 이제부턴 네가 차도록 해라.’
나는 천천히 아버지의 시계를 풀어 내 손목에 찼습니다. 내가 그것을 바라보고 있을 때 아버지는,
‘너도 언젠가는 그 시계와 작별해야 할 때가 있을 거다.’
나는 그 시계를 손목에서 푼 적이 거의 없습니다. 그런데 한 달 전쯤의 일입니다. 퇴근길에 친구와 체육관에서 운동을 하고 샤워를 한 뒤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옷을 갈아입고, 저녁 모임에 나갔습니다. 그날 밤, 막 잠자리에 들려는 순간, 나는 시계가 없어진 것을 알아차렸습니다. 며칠 동안 시계를 찾아 사방으로 돌아다녔으나 헛수고였습니다. 나는 아버지와 내 어린 시절의 상징물인 시계를 잃어버렸다는 자책감과 싸우면서 아버지가 하시던 말씀을 떠올렸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소유하고 있는 모든 것은 잠시 우리에게 맡겨진 것에 불과하다는 가르침을 새삼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석 달이 지난 어느 날, 나는 침대 스탠드에 물을 쏟고 말았습니다. 물을 닦아내려고 침대 너머로 몸을 기울이다가 시계를 발견했습니다. 그것은 침대 난간 뒤에 떨어져 있었습니다. 시계는 다시 돌아왔지만, 소유하는 모든 것은 영원하지 않다는 내 생각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우리가 어떤 물건을 소중히 간직하는 이유는 그 물건 자체의 가치보다는 그것이 상징하는 의미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것의 의미는 물건과는 상관없이 영원히 우리와 함께 있습니다.
상실은 아주 복잡한 감정이며, 한 가지 모습으로 드러나지 않습니다. 상실에 대한 반응은 어느 누구도 예측할 수 없습니다. 슬픔은 아주 개인적인 감정입니다. 슬픔의 감정은 사람에 따라 격렬하게 나타날 수도 있고, 깊숙이 잠재되어 있을 수도 있습니다. 살인이나 전염병, 돌발적인 재난 등으로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을 때 우리의 슬픔은 가중 됩니다. 죽음이 가져온 상황보다 분노 때문에, 또는 사건의 갑작스러움 때문에 우리의 삶이 정상적인 궤도를 이탈하기도 합니다. 실제로 모든 슬픔의 감정은 복잡합니다.
과거의 슬픔은 종종, 우리가 그것을 꺼낼 때가지 유예되어 있기도 합니다. 때로는 새로운 상실이 과거의 슬픔을 일깨우기도 합니다. 또는 나중에 다른 상실을 경험할 때까지 현재의 상실을 느끼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1940년대에 흔했던 ‘전쟁 신부(전쟁터에 나간 군인과 결혼한 신부)’ 중 한 사람이었던 모린은 당시 병무청으로부터 남편 롤랜드의 사망 통지서를 받고 망연자실했습니다. 학생 커플인 모린과 롤랜드는 일본이 진주만 폭격을 감행한 몇 주 뒤, 롤랜드가 입대하기 직전 서둘러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그런데 사망 통지서가 온 것입니다. 21세에 과부가 된 모린은 남편의 죽음을 슬퍼하기 보다는 곧바로 다른 주로 이사해 직장을 구하고 새 삶을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재혼했습니다. 그 후 세 딸을 낳았고, 과거는 완전히 잊혀졌습니다. 새 남편은 모린의 전남편 롤랜드에 대해서 알고 있었지만 세 딸이나 새 친구들에게 롤랜드에 관한 이야기를 하지 않았습니다. 전의 시댁 식구들이나 그 친구들과도 연락을 끊었습니다. 그렇게 50년이 지났고, 두 번째 남편이 병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러자 사별한 두 남편을 향한 슬픔이 한꺼번에 몰려와 눈물이 터져나왔습니다. 그녀는 거실에 두 사람의 사진을 나란히 걸어두었습니다. 그러면서 자신이 겪은 상실감을 정리해 나갈 수 있었습니다.
상실의 감정이 단순하든 복잡하든, 우리는 자신만의 시기에 자신만의 방식으로 그것을 치유할 것입니다. 슬픔의 방식은 개인마다 다릅니다. 그러므로 삶의 어느 한 지점에 묶여있지 않고 계속 앞으로 나아가는 한 우리는 치유될 것입니다. 어느 한 여성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엄마는 내게 아주 심하게 대했지요. 말 그대로 폭군이었죠. 그런 엄마가 돌아갔는데 내가 왜 슬퍼해야 하죠?’
메리 셀리의 유명한 소설 ‘프랑켄슈타인’을 원작으로 한 영화에서, 프랑케슈타인 박사는 인조인간의 삶과 행복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하지 않은 채, 비참하고 고통스럽게 살 수밖에 없는 괴물을 만들어냅니다. 영화의 결말 부분에서 프랑켄슈타인 박사가 살해되었을 때, 괴물은 울음을 터뜨립니다. 자신에게 큰 고통을 안겨준 사람이 죽었는데 왜 그렇게 슬피 우느냐는 물음에 괴물은 간단히 대답합니다. ‘그는 내 아버지였으니까요.’
때로 우리가 겪은 상실을 치유함으로써 얻는 배움은, 새로운 상실을 피해갈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아무리 상실을 겪지 않으려고 노력해도 그것은 결국 찾아옵니다. 사람들과 거리를 두고 지내면 상실을 경험하지 않을 것이라 믿지만 그것 자체가 하나의 상실입니다.
갈등을 겪는 부부가 있었습니다. 둘 다 아이를 갖고 싶어 했지만 여자가 계속 아이 갖는 것을 미루었습니다. 알고 보니 여자의 부모와 조부모가 모두 암으로 세상을 떠난 것입니다. 그녀는 아이를 갖게 되면 자신이 아이를 잃거나 아이들이 그녀를 잃게 될까봐 두려웠습니다. 그렇다면 아이를 입양할 수 있겠지만, 입양한 아이의 유전자에 또 다른 문제가 있다면 어떻게 합니까? 아이가 교통사고를 당하면 어떻게 합니까? 상실이 없는 세상을 만드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녀는 자신이 두려워하는 일들이 하나의 가능성일 뿐이며, 필연적인 것이 아님을 깨달았습니다. 두려운 일로 가득한 불완전한 세상에서도 잘 살아갈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인 후에야 그녀는 아이를 갖기로 결심했습니다.
상실은 종종 어른이 되는 입문식입니다. 상실은 불길을 헤치고 삶의 다른 편으로 갈 수 있는 통과의례와 같습니다. 그 불길 속에서 무언가 새로운 것이 탄생하며 우리 자신도 변화합니다. 사회가 상실을 경험하듯, 가정과 개인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아직 어렸을 때, 병원에서 퇴원하시던 어머니가 그 자리에서 다시 쓰러진 일이 있었습니다. 나(데이비드 케슬러)는 너무도 무서웠고, 어머니에게 다시 입원하라고 말했습니다. 어머니는 나의 겁먹은 얼굴을 내려다보며, ‘사람은 누구나 쓰러지게 마련이란다. 그리곤 다시 일어서지. 그게 삶이야.’
상실을 치유하는 데는 여러 단계가 있습니다. 마음의 준비가 되면 먼저 상실을 느끼고, 그 사실 자체를 인정해야 합니다. 상실을 부정하는 시간을 갖되 자신이 느끼는 것이 정상적인 감정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고통을 겪는 것만이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길입니다. 때가 되면 그것을 이해할 것입니다. 상실을 진정으로 이해하기까지는 여러 해가 걸립니다. 그 때 비로소 당신은 상실을 가져다 준 이 세상을 받아들일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죽음과 맞서 싸우는 사람들을 관찰하다 보면 그들의 행동에서 놀라운 상징성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처음엔 마치, ‘나는 한 때 이곳에 존재했었다.’고 말하려는 듯이 열심히 자신의 사진을 찍습니다. 그러다가 병세가 차츰 악화되고, 감정이 새로운 단계로 접어들면, 더 이상 사진을 찍지 않습니다. 사진조차도 영원하지 않다는 것을 깨달은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자신의 마음,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들의 마음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상실 너머에 존재하는 초월적인 부분을 발견하는 것입니다. 결코 사라지지 않는 자기 자신의 진정한 부분, 사랑하는 이들의 진정한 부분을 당신은 발견할 수가 있습니다, 나아가 정말로 소중한 것은 영원히 간직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배우게 됩니다.
어느 늦은 저녁, 나는 암 병동에서, 자신이 돌보던 환자가 죽어서 큰 충격에 휩싸인 간호사와 얘기를 나누게 되었습니다. 그녀는 하소연했습니다. ‘이번 주에만 벌써 여섯 명이 죽었어요. 더 이상은 못 참겠어요. 사람들이 죽고, 죽고, 또 죽어가는 걸 보고 있을 수가 없어요. 끝이 보일 것 같지 않아요.’ 나는 이 마음 여린 간호사에게 잠깐 밖에 나가서 산책을 하자고 권했습니다. 나는 그녀의 손을 잡고 공중다리를 건너 옆 건물로 갔습니다. 그리고 모퉁이를 돌아 산부인과 병동으로 가서, 신생아실이 들여다보이는 유리 칸막이 앞으로 그녀를 데려 갔습니다. 그 앞에 서서 나는, 마치 한 번도 보지 못한 광경을 보는 듯, 새 생명들을 바라보는 그녀의 얼굴을 지켜보았습니다. 나는 이렇게 말해 주었습니다. ‘힘들 때마다 자주 여기 들러서 이 세상에 단지 죽음만이 있는 건 아니라고 스스로에게 얘기해 주세요.’
가장 고통스런 상실을 겪는 와중에도 삶은 계속됩니다. 온갖 상실과 고통이 당신에게 밀려닥치더라도 새로운 생명의 기운이 주위를 가득 채우고 있습니다. 고통의 한가운데 있을 때에는 상실감이 결코 끝나지 않을 것 같지만 삶이란 수레바퀴는 계속 굴러갑니다. 그 간호사는 자신의 직업을 단지 죽음의 측면에서만 바라보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어쩌면 오래 전에 이곳과 비슷한 신생아실에서 태어났을지도 모를 사람들, 그들이 자신의 삶을 완성하도록 돕는 것이 그녀의 일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