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수업』초록(抄錄)(1)
글쓴이 | kilshi | 2008-08-28 11:36:27, 조회 : 862 |
내가 살아오면서 순간순간 아쉬워하는 것은, 늘 지나간 후에 느끼고 깨닫고, 그리고 애마르고 후회하고, 하며 살아왔습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도, 왜 좀 더 일찍이, 아니 내가 방황하던 그 때에 이런 책들이 손에 잡히지 않았던가? 이건, 이런 황혼기에 접어든 사람보다도, 자기 자신의 인생을 시작하려는 10,20대의 젊은 사람들에게 더 절실하고 필요한 얘긴데……. 그러나 안타깝게도 지금 막 길을 찾아나서는 젊은 사람들에겐 이 책이 눈에 들어오지 않을 것입니다. 여기에 이 책을 요약해 올리는 이유는 내 홈페이지에 들어오는 사람들 중에 이 글이 도움이 될 사람들, 특히 인생에 대하여 물음을 가지는 젊은 사람들에게 살아가는 데 도움이 되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白洋-
『인생 수업』초록(抄錄)
『인생 수업』은, 호스피스(hospice : 말기 환자의 간호 요양시설) 운동의 선구자이며, 20세기를 대표하는 정신의학자인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와, 그녀의 제자 ‘데이비드 케슬러’가, 죽음 직전의 사람들 수백 명을 인터뷰해, ‘인생에서 꼭 배워야 할 것들’을 받아적어, 살아있는 우리들에게 강의 형식으로 쓴 것을, ‘류시화’가 옮긴 책이다. 몇 회가 될지 모르지만, 요약해 나가려고 한다.
우리는 배움을 얻기 위하여 이 세상에 왔다. 태어나는 순간 누구나 예외없이 ‘삶’이라는 학교에 등록한 것이다. 살고Live, 사랑하고Love, 웃으라Laugh, 그리고 배우라Learn. 이것이 우리가 이곳에 존재하는 이유다. 삶은 하나의 모험이거나 그렇지 않으면 아무것도 아니다. 지금 이 순간 가슴 뛰는 삶을 살지 않으면 안 된다.
-류시화-
1. 자기 자신으로 존재하기
어느 40대 초반 여성의 경험담입니다.
‘어느 금요일 오후, 고속도로를 달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앞서 달리던 차들이 멈춰 섰습니다. 나도 정지한 뒤 무심코 백미러를 보았습니다. 그런데 내 뒤를 따라오던 차가 정지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전속력으로 돌진해 오는 게 아니겠습니까? 순간, 나는 운전대를 꽉 움켜잡고 있는 내 손이 내려다보였습니다. 그리고 곧 긴장이 풀리면서, 눈을 감고 숨을 크게 들이 쉬고 양손을 옆으로 내려놓았습니다. 삶에, 그리고 죽음에 순순히 나 자신을 맡겼습니다. 뒤이어 엄청난 충격이 느껴졌습니다. 얼마 후 사방이 고요해지고, 나는 눈을 떴습니다. 놀랍게도 나는 멀쩡했습니다. 내 앞 차와 뒤 차, 그 중간에 있던 내 차는 종잇장처럼 구겨져 있었는데도 말입니다. 경찰은 내가 긴장을 푼 것이 천만다행이었다고 했습니다.
나는 그것으로 다치지 않고 살아남았다는 그 이상의 큰 경험을 얻었습니다. 지금까지 나는 늘 주먹을 꽉 움켜쥔 채 살아왔지만, 평화롭게 손을 편 채로도 살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것은 곧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배움이었습니다.’
인간은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삶 속에서 배움을 얻으려 하고, 그 해답을 찾습니다. 끊임없이 ‘나는 누구인가?’를 찾고 진정한 행복에 이르는 길을 발견하려고 시도합니다. 그러나 시도해 본 여러 가지 방법들에서 자신이 추구하는 의미를 발견할 수 없으며 심지어 그것들이 고통을 가져다 가져다줄 뿐이라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삶을 바라보는 시각이 완전히 달라집니다. 대체로 불행이나 죽음 앞에서 그것을 발견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그 배움을 불행이나 죽음 앞에서 아니라 지금 이 순간 얻을 수는 없을까요?
배움을 얻는다는 것은 다른 사람이 아닌 자기 자신이 인생을 사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당신이 배워야 할 것이 무엇인지 알려 줄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것을 발견하는 것은 당신만의 여행입니다. 이 책에서 우리는 삶의 길을 들여다보고, 죽음이라는 종착점에서 바라본 삶의 모습이 어떠한지를 발견해 나갈 것입니다.
우리가 만난 대부분의 사람들은 삶에서 큰 상실감에 빠졌을 때, 사랑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들은 이제 밖에서 행복을 찾는 일을 중단하고 자신의 가슴에 귀기울이는 법을 배웁니다.
삶은 탄생에서 죽음에 이르는 수업과 같습니다. 그 수업들에서 살아가는 단순한 진리들을 배웁니다. 때로는 최악의 상황에 직면할 때 우리는 더 많이 성장합니다. 조건이 가장 나쁠 때 오히려 자신이 가진 최상의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나는 누구인가? 아마 이것이 가장 어려운 질문일 것입니다. 나는 이 육체인가, 내가 앓고 있는 병이 곧 나인가, 내가 자란 과정의 결과물이 곧 나인가, 나는 변화할 수 있는가?
당신은 그 어느 것도 아닙니다. 당신 안에는 정의 내릴 수 없는 불변의 무엇인가가 있습니다. 당신 안에 태어날 때부터 갖고 나온, 지금까지 지니고 살아왔으며 죽을 때도 함께할 진정한 모습이 존재합니다. 병과 싸우는 사람들을 보고 있으면, 자신이 누구인가를 알기 위해서는 진정한 자신이 아닌 것들을 모두 벗어던져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삶의 마지만 순간이 가까워오면 사람들은 더 진실해지고 정직해지고 더 진정한 자신이 되기 때문입니다. 마치 어린 시절로 돌아간 것처럼. 그렇다면 삶의 시작과 끝에서만 우리는 진정으로 우리 자신을 알 수 있는 것일까?
누군가 미켈란젤로에게, 어떻게 그 훌륭한 조각상을 만들 수 있었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는, 이미 조각상이 대리석 안에 있다고 상상하고 필요없는 부분을 깎아내어 안에 존재하던 것을 꺼내어 주었을 뿐이라고 대답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내면에 위대함의 씨앗(진정한 자아)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인가에 가려 드러나지 못하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불행히도 우리의 진정한 자아는 현실에서 쓰고 있어야 하는 가면과 역할들에 가려져 있기가 쉽습니다.
자신의 진정한 모습을 아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나(엘리자베스 퀴틀러 로스)는 세쌍둥이 중 하나로 태어났습니다. 사람들은 우리를 각각의 개인으로 대하지 않고 한 묶음으로 대했습니다. 심지어 아버지도 우리를 구별하지 못할 때가 많았습니다. 그래서 나는 항상 나 자신이 되려고 노력했습니다. 그 때문에 진정한 자기 자신으로 존재하는 사람들을 알아보는 요령이 생겼습니다. 만일 그가 진짜라고 느껴지면 나는 접근해도 좋다고 신호를 보냅니다. 죽음을 앞둔 사람들은 이미 진정한 자신의 모습으로 돌아와 있기 때문에 진정성의 냄새를 맡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자신에게 맞는 역할과 그렇지 않은 것을 가려내야 합니다. 그것은 양파 껍질을 벗기는 것과 같습니다. 자신의 부정적인 면도 인정하고 드러내야 합니다. 그것은 고통스러운 일입니다. 모든 인간에게는 부정적인 모습이 잠재되어 있습니다. 그것을 부인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입니다. 일단 인정하고 나면 노력으로 그것을 내보낼 수 있습니다. 자신이 특별히 좋은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면, 좋은 사람인 척하는 가면을 벗어버리고 진정한 자신을 찾아야 합니다. 모든 순간을 좋은 사람으로 살아가려는 삶은 가식적이기 때문입니다. 더 중요한 것은 어린 시절 살아남기 위해서 터득한 방어술을 버리는 일입니다. 그것들은 더 필요없게 되면 거꾸로 자신을 공격해 올 수 가 있습니다.
자신의 부정적인 면을 인정하지 않으면 자기 안에 뿌리박힌 부정적인 생각들을 떨쳐버릴 수 없습니다. 자신이 느끼는 감정을 모두 인정할 때 비로소 온전한 자기 자신이 될 수 있습니다. 거짓된 모습에 대한 환상을 버릴 때 진정한 자기 자신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삶이란, 무엇을 하는가가 아닌, 존재에 관한 문제인 것입니다.
이 세상이 시작된 이후부터 끝나는 날까지, 당신과 똑같은 사람은 영원히 존재하지 않을 것입니다. 당신은 특별한 역사와 사건을 겪은 특별한 존재입니다. 그러나 진정한 자신이 누구인지 발견한 후에야 비로소 그 특별함을 누릴 수 있습니다. 진정한 자신을 발견하고 스스로에게 진실해지려면, 또 자신이 원하는 것과 원하지 않는 것을 찾아내려면, 일상적인 일에서 그것을 경험해야 합니다. 만일 남의 눈에 가치있게 보이려고 일한다면 자신의 진정한 가치를 보지 못할 것입니다. ‘하고 싶은’ 일보다는 ‘해야만 하는’ 일에 자신이 얼마나 붙잡혀 사는지 알면 놀랄 것입니다. 아무도 보는 사람이 없다면 무엇을 할지 스스로에게 물어보십시오. ‘결과에 신경쓰지 않고, 원하는 무엇이든 할 수 있다면, 어떤 일을 할 것인가?’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당신이 누구인지, 또는 적어도 당신을 가로막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많은 것을 가르쳐 줄 것입니다.
휴가 여행을 가면 나(데이비드 케슬러)는 늘, 아침 일찍 일어나 최대한 많은 것을 보고, 많은 일을 하고, 밤늦게 지쳐서 돌아왔습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결국 휴가 기간이 즐겁지 않고 많은 스트레스를 받았음을 깨닫게 되자, 나는 아무도 보고 있지 않다면 무엇을 할지 자문해 보았습니다. 마음속에서는 아침 늦게까지 자고, 몇몇 군데만 관광하고, 해변이나 베란다에 앉아 책을 읽거나 그냥 가만히 있고 싶다고 대답했습니다. ‘모든 것을 봐야만 성이 차는 열성적인 관광객’은 본래의 나 자신이 아니었던 것을 깨닫게 되면서 훨씬 행복해졌습니다.
세 딸을 혼자서 키웠던 티모시는 60세에 심장마비를 앓으면서 자기의 삶을 돌아보기 시작했습니다. 딱딱하게 굳어진 것은 동맥뿐만이 아니라 마음도 굳어 있었음을 알았습니다. 그것은 아내가 죽었을 때부터인 것 같았습니다. 그는 강해야 했고, 딸들 역시 강하게 자라주길 바라, 아주 엄하게 키웠습니다. 그러나 이제 더 이상 엄한 아버지가 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는 딸들에게 사랑을 고백했습니다. 그리고 이제 마음속 깊은 곳의 자기 자신일 수 있었습니다.
당신의 진정한 자아는 어둠 속에서 당신을 인도하는 불빛과 같습니다. 자신이 누구인지를 깨닫게 되면 자신이 해야 할 일, 배워야 할 교훈이 보입니다. 우리는 몸에 무슨 일이 일어나든, 얼마나 많은 돈을 가지고 있든, 자녀를 몇 명 두었든, 자신의 본질은 그것들과 상관없는 저 너머에 존재하는 것입니다. 진정한 자신이 된다는 것은 자신의 인간적인 자아를 존중하는 것을 말합니다. 때로 감추고 싶은 자아의 어두운 부분까지도 포함해서. 우리는, 사람들이 선한 마음에 이끌리기보다는, 인위적이고 멋진 모습으로 진정한 자신을 가리고 있는 사람보다는, 사실은 진정한 인간의 모습에 더 이끌리는 것입니다.
여러 해 전, 나(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는 시카코 의대에서 가장 인기있는 교수로 뽑힌 적이 있습니다. 발표가 있던 날 다들 평상시와 다름없이 친절하였지만, 그들의 미소 뒤에 말하지 않는 무엇인가가 있음을 느꼈습니다. 저녁 때, 동료 교수 하나가 멋진 꽃다발을 보내왔습니다. 카드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습니다. ‘질투가 나서 죽을 지경이었지만, 어쨌든 축하해요’ 그 순간부터 나는 이 남자만은 믿을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진정한 자신에 가까워지려면 자신의 어두운 면과 결점에 대해서도 솔직해져야 합니다.
한 남자가, 건강이 몹시 안 좋은 70대 후반의 자기 할머니에게, ‘할머니, 전 할머니를 보내드릴 수 없어요.’ 그러자 할머니는, ‘얘야, 난 만족한단다. 내 삶은 멋지고 완벽했어. 더 이상 내 모습이 생기로 가득차 보이지 않는다는 건 알지만, 나는 이미 이 여행에서 많은 것을 누렸어. 삶이란 마치 파이와 같지. 부모님께 한 조각, 사랑하는 사람에게 한 조각, 아이들에게 한 조각, 일에 한 조각, 그렇게 한 조각씩 떼어주다 보면 삶이 끝날 때쯤엔 자신을 위한 파이를 한 조각도 남겨두지 못한 사람도 있단다. 그리고 처음에 자신이 어떤 파이였는지조차 모르지. 난 내가 어떤 파이였는지 알고 있단다. 그것은 우리 각자가 알아내야할 몫이지. 난 이제 내가 누구인지 알면서 이 세상을 떠날 수 있단다. 그 남자가 다시 할머니에게, ‘내가 죽을 때쯤엔 나도 할머니처럼 나 자신이 누구인지 알게 되기를 바란다.’ 고 말하자, 할머니는 마치 비밀이라도 말하려는 듯이, ‘네가 어떤 파이인지 알기 위해 죽을 때까지 기다릴 필요는 없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