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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 -유치환-

최길시 2021. 10. 10. 11:03
글쓴이 kilshi 2008-08-14 09:39:10, 조회 : 769

 

 

행 복

유 치 환

---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

오늘도 나는

에메랄드 빛 하늘이 환히 내다뵈는

우체국 창문 앞에 와서 너에게 편지를 쓴다.

 

행길을 향한 문으로 숱한 사람들이

제각기 한 가지씩 족한 얼굴로 와선

총총히 우표를 사고 전보지를 받고

먼 고향으로 또는 그리운 사람께로

슬프고 즐겁고 다정한 사연들을 보내나니.

 

세상의 고달픈 바람결에 시달리고 나부끼어

더욱 더 의지삼고 피어 흥클어진

인정의 꽃밭에서

너와 나의 애틋한 연분도

한방울 연련한 양귀비꽃인지도 모른다.

 

---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

오늘도 나는 너에게 편지를 쓰나니

--- 그리운 이여, 그러면 안녕!

설령 이것이 이 세상 마지막 인사가 될지라도

사랑하였으므로 나는 진정 행복하였네라.

 

 

오늘(음력 7월 14일)이 청마 유치환의 탄생 100주년이랍니다. 내가 고등학교 다닐 때부터 그 후에도 오래도록(지금도 있는지는 모르지만, 내가 가르치던 80년대까지도) 국어교과서에 ‘이것은 소리없는 아우성‘으로 시작되는 ’깃발’의 작가. ‘바위’를 예시하며 생명과 의지의 시인으로 배우고 가르치던 그의 또 다른 면모의 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