햄릿을 마치고...
글쓴이 | 이원일 | 2007-11-22 13:22:01, 조회 : 1,164 |
햄릿을 마치고...
눈이 부시게 노란 은행나무 터널이 그 빛을 바래어 갈 때쯤 공연은 막을 내렸습니다.
언제나 그렇듯이 긴 여정일 것이라고 생각했었는데 눈 깜박하는 사이에 끝이 제 앞에 있었습니다.
참으로 의미있는 작업이었습니다. 세익스피어의 작품만큼이나 햄릿의 제작을 결정하고 무대에 올리는 과정은 극적이었습니다. 처음 자료를 접했을 때는 타성에 젖은 탓인지 그냥 누군가가 제게 뮤지컬 한 편을 소개했구나라는 정도의 만남이었습니다. 그것도 체코라는 변방의 작품을... 하지만 체코는 낭만의 고도 프라하만큼이나 깊고 아름다운 음악세계를 간직한 나라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고, 2005년 브로드웨이 오리지널 뮤지컬 렌트를 접할 때와 같은 짜릿한 전율을 느꼈습니다. 꼭 해야겠다고, 무대에 올리고 말겠다고! 여러가지 구조적 결함이 있었음에도 회사를 오랫동안 설득하였습니다. 아이들이 맨날 아빠랑 놀지 못한다고 아우성이고 심지어 "아빠, 일찍 퇴근하는 회사로 옮기면 안돼요?"라는 소리를 할 정도로 많은 과제들과 씨름을 하였습니다. 때 마침 기획중이었던 KBS 일일시트콤 "못말리는 결혼"이 편성 확정되어 공연과 방송을 넘나들어야하는 이중고도 겪었습니다. (지금은 못말리는 결혼도 잘 방송되고 있답니다.^^*)
아무튼 처음 겪는 일이 아니지만 반복되는 제작의 여정은 사람을 지치게도하지만 열정에 들뜨게도 만들었습니다.
파주 출판단지의 썰렁한 빈 극장에 리허설 무대를 만들어 놓고 가봉이 막 끝난 의상을 입은 배우들과 어렵사리 런스루(공연의 처음부터 끝까지를 점검하는 리허설의 형태)를 마쳤을 때, 체코의 원작자이자 체코의 국민가수인 야넥 레데츠키와 브로드웨이에서 뮤지컬 햄릿을 연출을 했었던 로버트 요한슨과 뜨거운 포옹을 했습니다. 그들이 말 했습니다. "멀리 여행을 떠나 보낸 자식이 아주 잘 커서 돌아온 것 같아 눈시울이 뜨겁다."고...
확신 했습니다. 흥행의 성공여부와 상관없이 최소한 나의 노력이 헛되진 않겠구나. 많은 사람들이 햄릿을 좋아하게 되겠구나 라고말이죠. 초롱하던 파주의 밤하늘 별이 갑자기 흐려지던 밤이었습니다.
뮤지컬을 올릴 때마다 많은 에피소드와 어려움을 경험하게 되는데, 그래서 첫 막이 올라갈 때 프로듀서의 감회는 새로울 수 밖에 없는데 전 특히나 객석 제일 뒷자리에 앉아 펑펑 울었습니다. 이제 우리의 노력이 그 빛을 발하는구나.
저렇게 아름다운 음악이 우리가 준비한 공간에서 울려퍼지는구나. 차가운 마룻바닥에서 몇달간 고생한 배우들이 어쩜 저리도 아름다울까 등등 사실 저보다 훨씬 뛰어난 표현력을 지닌 문장가도 형언할 수 없을거라고 감히 생각하는데 제가 흘린 눈물의 의미는 어떻게도 그 뜻을 헤아릴 수 없는 복합적인 의미였을겁니다. 하지만 부끄럽지 않게 펑펑 울었습니다. 기뻐서 울고, 좋아서 울고, 스쳐가는 많은 일들의 회한에 울고, 그냥 그냥 울었습니다.
"산다는 건 연극 같아!" 라던 햄릿의 노랫말이 귓전에 아직도 박혀있습니다. 피가 끓고 울고 웃기도하지만... 무대에 공연을 올리고 여러 감정에 휩싸여 휘적이던 제 인생은 어쩌면 한 편의 연극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올린 뮤지컬을 소외 계층에도 보여주고, 문화를 접하지 못한 소외지역의 학생들에게 보여주고, 나를 위해 애쓰는 군인, 경찰들에게도 보여주었습니다. 사실은 항상 부모님께 먼저 보여드리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시골에 계시는 당신들께서는 시간적, 지리적 이유로 한사코 마다하셨습니다. 아직까지도 저의 부모님들께서는 제 공연을 한 편도 못보셨답니다. ㅠㅠ
어느날 문득 바닥에 떨어진 은행잎을 만지작거리다가 연극 같은 인생을 살고 있는 제가 많은 가르침을 주신 분이 계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대학 졸업 후 한 우물을 파면서 처음으로 제 일과 관련하여 선생님을 떠올렸습니다.
강릉고등학교 1학년 때 선생님이 국어를 가르치셨는데 과목으로 국어에 대한 애정을 갖게 된 아주 중요한 계기였습니다. 지금의 독서력, 표현력, 사물과 현상에 대한 감성, 제 인생을 연극에 비유할 줄 아는 약간의 재치(?) 모두가 선생님으로 비롯되었음을 새삼 깨달았습니다. 선생님이 일본에 게실 때 주고 받았던 서신 지금도 가지고 있고 그래서 다시 꺼내어 읽어 보기도 했습니다. 아름다운 극에 대한 열정은 곱씹어 생각해보아도 거의 모두가 선생님의 영향이었다는 판단이 들었습니다. 선생님 감사합니다. 선생님 덕분에 세상의 아름다움을 느낄줄 알고 표현하려고 노력하는 제가 되었습니다.
다시 한번 선생님께 감사드립니다. 꼭 한번 이 말씀 드리고 싶었습니다.
더 건강하고 아름다운 작품들을 무대에 올리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그리고 그 때마다 선생님 모시겠습니다.
기꺼이 저의 초대에 응해주셔서 정말, 정말로 감사드립니다. 더불어 좋은 평가에도 감사드립니다.
이원일 올림
사는 것
죽는 것
그건 무엇일까
죽는건 단지 잠드는 것, 그뿐...
어쩌면 나
꿈
꾼걸까
...
< 뮤지컬 햄릿>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