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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 놓고' -김 동 찬-
최길시
2021. 10. 6. 08:24
글쓴이 | kilshi | 2007-07-10 11:41:14, 조회 : 1,085 |
아침에 첫 매미소리를 들었습니다. 매미가 울면 여름이 왔다는 실감이 피부에 와 닿습니다. 나는 매미소리를 들을 때마다, 1963년 사천 사기막 용연사에서 들었던 그 때의 매미소리가 떠오릅니다. 태어나서 그렇게 많은 매미가 일시에 발악하듯이 절규하듯이 울어대던 소리는 처음이었습니다. 동트기 전부터 울기 시작하면 밤이 깊도록 울었습니다. 처음에는 시끄러워 글자가 머리에 들어오지 않을 정도였는데, 한참 지나니 그것이 그렇게 아늑하고 정겹게 들릴 수가 없었습니다. 가끔 그들이 유유히 노래하는 그늘 밑 바위에 팔베개를 하고 누우면 마치 신선이 된 듯한 기분이었습니다.
어렸을 때, 집 뒤에 대장간이 있었습니다. 밤나무 그늘 아래 있던 그 대장간은 일년 내 쉬는 때가 거의 없었는데, 불볕같은 한여름 한낮에, 나무들마저 더위에 늘어져 세상은 모두 정지된 듯 고요한데, 태양보다 더 이글거리는 화덕 앞에서, 모루 위에 놓인 불덩이같은 쇳덩이에 커다란 망치를 쉴 새 없이 내리칩니다. 웃통을 벗어부치고 땀을 비오듯이 쏟으며 그렇게 힘차게 열심히 일하는 아저씨가 신비하기도 했습니다. 그 망치 소리를 멀리서 들으면 한낮의 정적 속에 외롭게 외롭게 들렸습니다. 나는 냇가로 가다가 말고 밤나무 그늘에 쪼그리고 앉아 한참씩 그 보습을 바라보곤 했습니다. 손 놓고……
손 놓고
김 동 찬
가끔은 모든 걸 놓고
뒤뜰에 앉아 있으면
잠자리 한 마리 마른 풀 위에 머무는 동안에도
바람이 지구를 밀고
저녁으로 가는 게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