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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에 쓴 인생론' -박목월-

최길시 2021. 10. 27. 12:49
글쓴이 kilshi [홈페이지] 2014-10-05 11:40:16, 조회 : 642

 

 

우연히 박목월의 산문집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의 시는 읽고 배우고 가르치기도 했지만,
산문은 읽은 기억이 없었다. 한 세대 앞선 사람들의 글투는 어떨가 하는 호기심으로 읽었다

처음엔 역시 글투나 말의 흐름이 달라 약간 어색했지만, 읽다 보니 어느새 나의 감각에 더 잘 스며들었다. 감동도 있었고 감정의 호응도 오히려 요즘의 글보다 더 자연스러웠다. 190-191쪽에 이런 대목이 있었다.

산 너머 저 멀리 하늘 끝에
행복이 깃들어 있다기에
나도 한번 찾아 나섰다가
눈물 지우고 되돌아왔네.
산 너머 저 멀리 더욱 먼 하늘 끝에
행복이 깃들어 있다기에.

-칼 부세-


김동인-무지개-이나 칼 부세가 그들의 작품 속에서 보여주고 있는 것처럼 행복이란 인간의 손으로 잡을 수 없는 하늘 끝에 빛나는 무지개와 같은 것이며 산 너머 저 멀리에만 깃들어 있는 것일까. <중략> 행복은 무지개처럼 하늘에 영롱하게 뻗쳐있는 것이기보다는 우리의 삶 속에서 발견되어야 할 성질의 것이다. 행복을 잡기 위해서 산을 넘고 골짜기를 건너 달려갈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행복은 겸손하고 겸허한 마음의 바탕 위에 슬며시 깃들게 되는 것이다. 행복은 불행처럼 야단스럽지 않다. 불행은 '천 개의 말방울을 달고' 소란스럽게 '그 어두운 얼굴'을 들고 나타나지만 행복은 숫처녀처럼 얌전하고 조용한 것이다. 우리가 마음의 눈을 닦고 겸허하게 살필 때 그것은 가만히 미소짓는 얼굴로 우리의 가슴을 채워주는 것이다. 또한 행복은 결코 만발한 장미처럼 화려하고 달콤한 길로만 우리를 방문하거나 영접하는 것도 아니다. 때로는 전혀 의외의 곳 -흔히 우리가 불행이라고 부르기 좋아하는 시련의 구석진 자리에서도 행복은 이미 미소로 얼굴을 들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