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화 (梅花)' -조희룡-
글쓴이 | kilshi [홈페이지] | 2014-04-03 11:27:33, 조회 : 744 |
매화 梅花
조희룡 (1789~1866)
우리 인생 그 어데서
밑도 끝도 없는 시름을 흩어 보내나?
향기롭고 눈 같은 매화의 바다에
다락배 하나 띄우면 되지.
책을 펼치면 복이 오는 것쯤이야
예전부터 잘 알고 있지만
꽃을 본다고 그 위에 다시
어떤 복이 얻어질까?
시들어가는 생명을 붙잡으려안달하는 미망은 본래부터 없으나
맑고도 고운 그 모습 사랑하여
백발 노년에 이르렀네.
그래도 반가운 소식 한 가지는
역풍이 내 깊은 방으로 불어오는 것,
꽃잎 하나라도
흐르는 물위에 띄워 보내지 않으려네.
吾生何處散閑愁(오생하처산한수) 香雪海中宜泛樓(향설해중의범루)
披卷從來知有福(피권종래지유복) 看花更復得何修(간화갱부득하수)
自非壽相留頹景(자비수상유퇴경) 爲愛淸華到白頭(위애청화도백두)
可喜逆風歸�閤(가희역풍귀비합) 不令一片付東流(불령일편부동류)
19세기의 우봉(又峰) 조희룡(趙熙龍, 1789~1866)은 매화를 몹시 사랑하여 수많은 매화 그림과 시를 남겼다. 이 시는 탐매(探梅)의 절정에 이른 순간을 묘사한다. 인생에 힘겨운 순간이면 매화 속으로 가라! 향설해(香雪海)에 배를 띄우고 구경하는 동안 마음의 상처가 치유되리라. 흐드러지게 피어 향기를 뿜어내는 매화의 바다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매화를 본다고 부귀나 명예가 조금도 늘어나지 않는다. 매화는 보는 이의 마음이나 영혼에만 영향을 미칠 뿐이다. 한 살이라도 더 살겠다고 아등바등하는 속물은 아니지만 매화를 보기 위해서라면 더 오래 살고 싶다. 바람이 불어온다. 꽃잎이 지겠지. 그래도 역풍이라 꽃잎을 나의 깊은 방 안으로 날려 보내니 고맙다. 꽃잎 하나라도 곁에 머물도록 문을 열어두어야겠다.
-조선일보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