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둑 까치와 말
글쓴이 | 김명기 [홈페이지] | 2013-12-23 22:31:11, 조회 : 892 |
도둑 까치와 말
월백설백천지백(月白雪白天地白), 근래 들어 포천 지역의 강설이 많아졌다. 이틀 전 폭설이 내려 간신히 치웠는데, 또 눈이 왔다. 폭설이 미세먼지도 없애고 천지를 순백의 설원으로 만든 것은 고마운 일이나, 인원은 적고 치울 면적이 넓은 승마장은, 제설 작업이 군대보다 빡세다는 푸념이 들려온다.
작업용 목장갑을 끼고, 삽을 들고 눈밭으로 나선다. 어쨌든 치워야 하는 것이다. 뽀드득 거리는 눈을 밟고 기세 좋게 나서다가 잠깐 멈춘다. 무슨 곡을 틀어 놓고 제설 작업을 할까? 마침 머리 위에 까치 한 마리가 멈추어 고개를 까딱이며 짖어댄다. 음. 그렇다면? 조아키노 로시니의 오페라, ‘도둑까치’ 이곡은 서곡이 경쾌해 제설 작업에 잘 맞는 것 같다.
도피 중인 아버지의 도피 자금을 마련하려 딸, 니네타가 은식기를 팔았는데, 마침 그 은식기가 사라지고 딸은 도둑으로 몰려 사형에 처하게 된다. 우연이 은화를 물고 가던 까치를 추적하여, 까치가 둥지에 숨긴 은식기를 찾아내고 해피앤딩으로 결말이 난다. 훈훈하다. 이 오페라는 프랑스에서 일어난 실제 사건을 토대로 만들어 진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프랑스에서는 은식기를 너무 늦게 찾아냈고 소녀는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그 영혼을 위로하는 미사곡이 만들어져 '까치미사'란 별칭으로 불려졌다. 늘 그렇지만, 현실은 지나치게 참혹하다.
오래 전 숲 속에서 혼자 말 12필을 돌보던 때다. 눈이 많이 내린 겨울 아침. 말에게 사료와 건초를 주자, 까치 한 마리가 날아와 말의 밥통에 앉아 사납게 짖어 댔다. 그러자 거대한 말이 뒤로 주춤주춤 물러나 도둑 까치님이 말 사료를 맛나게 드시고 떠날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아닌가? ‘아니, 이 거구가 까치를 무서워 해? 동물의 세계는 정말 경이롭다.’ 라고만 생각했다.
그로부터 10여년이 지난 지금, 다시 눈이 왔고 까치가 짖는다. 눈삽을 짚고 설원에 멈추어 서서, 도둑까치 서곡을 들으며 같은 사건을 다시 생각한다. 말은 길이가 2미터에 육박한다. 무게는 500Kg을 오르내린다. 일반적으로 말의 마방은 3*3 미터 가량이거나 조금 더 넓다. 이래서 말은 마방에서 눕거나 돌아다니다 부상을 입는 경우가 종종 있다. 여기서 잡지도 못할 까치를 상대로 실랑이를 하다가는, 말 스스로 부상을 입을 위험이 크다.
말에게는 매일 하루 3끼 충분한 양의 사료와 건초가 주어진다. 까치가 먹어 봐야 얼마나 먹으랴. 폭설이 내리고 먹이를 찾지 못하자, 말에게 와서 사료를 구걸한 것은 아닐까? ‘남편 까치는 바람나서 날아가고, 어린 까치가 어쩌고...’ 까치답게 하이톤으로 구걸하고, 말은 너그럽게 뒤로 물러나 이 불청객이 식사를 마칠 때까지 건초나 우물거리면서 기다려 준 것은 아닌지? 만약 까치 먹는 것이 아까워 까치를 쫒으려 난리를 친다면, 말은 스스로 큰 부상을 입게 될 것이 분명하다.
많이 가진 사람들일수록 자신의 것을 지키려 안갖 힘을 쓴다. 당연하다. 그런 노력이 재산과 부를 만들어 준 것이겠지. 그러나 자신의 규모가 비대해 진 것에 비교해, 아주 사소한 것까지 지키려다가 엉뚱한 일에 휘말려 큰 손해를 본다. 小貪大失(소탐대실), 목숨을 구걸하는 까치를 상대로 싸울 일이 있을까? 그깟 사료 몇 톨이면 모두가 행복하다. 공든 탑을 무너뜨리는 것은, 결국 마지막에 올린 작은 돌덩이 하나다. 오늘 너그러운 말에게 다시 배운다. 자, 이제 다시 눈 치우기 시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