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길시 2021. 10. 23. 05:53
글쓴이 김명기 [홈페이지] 2012-04-15 06:32:25, 조회 : 972

 

 

잿빛 봄

지나는 길 멀리에서 마악 꽃송이를 벌리려는 백목련의 결심을 보니, 봄이 오기는 오는 모양이다. 매일 아침 출근하는 남양주마필집중센터만 이상하게 찬바람이 불고 있다. 제법 두터운 옷을 입는데도 한기가 옷깃을 파고든다. 오래전 낡은 라디오에서 나오던 엉성한 일기예보처럼, 아마도 봄은 ‘곳에 따라’ 오고 있는 모양이다.

거실 무늬목에 손바닥만한 햇살이 늘어지게 기지개를 켠다. 작은 자전거 그림자가 조금씩 길어진다. 시간이 또 사라졌다. 지난 5년간의 시간이 어디론가 사라지고 기억나지 않는다. 아니 기억하면 안 된다. 나는 대뇌를 절대한 환자가 되어 멀쩡한 미소를 지어야만 한다. 입술 한쪽이 일그러진 그런 종류의 아무렇지도 않아 보이려 노력하는 미소.

다람쥐 쳇바퀴 같은 일상에서 단 20분이라도 시간을 따로 쪼개보려고 한다. 나의 잘 못된 선택은 나를 다시 원점으로 돌려놓았다. 시간은 내게 정면만을 바라보기를 원한다. 아마도 운명은 내 곁에 많은 함정을 파고 걸려들기를 고대하고 있는 것이겠지. 결핍을 주고, 그 결핍을 피하려는 내 앞길에 파놓은 함정들...

어쩌면 한두 개 쯤의 함정에 걸려들지도 몰라. 내가 현명하지 않거나 운이 좋지 못하다면, 멀쩡한 길도 ‘요 녀석이?’ 하고 갑자기 함정이 되고 싶은 심정이 되 버릴 지도 모른다. 멀쩡한 사람이 함정에 걸려 비틀비틀한다면, 그건 상당한 몸 개그로 보여 질 수도 있다. 일단 그런 건 제 3자에겐 재미난 일일 것이다. 어쨌든 잠정적 악인인 타인을 가해자로 만드는 것은 바로 나 자신이다.

10년 만에 다시 손에 든 ‘고요한 돈강’ 7권을 덮으며 커피 잔을 들고 혼자 중얼거린다. 절대로 마음을 함부로 드러내지 않을 일이다. 검증 되지 않은 사람들에게 고민을 털어 놓을 일이 아니다. 내 마음을 열어 악마들의 놀이터로 만들 일이 아니다. 이런 가슴 시린 독백 따위 다시는 하지 않으려면, 마음의 빗장을 꽁꽁 닫을 일이다. 언제나 두려운 것은 사람이었다.

Rachael Yamagata 가 낮게 읊조리는 아침이다. 어제 저녁에도 별은 보이지 않았다. 봄은 길을 잃었나? 잿빛 봄이라니... 어울리지 않는다.


原點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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