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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의 겨울' -이임영-

최길시 2021. 10. 22. 09:32
글쓴이 kilshi 2012-01-30 17:33:11, 조회 : 882

 

 

고향의 겨울

이 임 영

종달새 우는 봄이면

밭을 일구고

추수 끝난 들판 위에

기러기떼가 날으는 가을이 가면

농삿일에 거친 삭정이같은 아버지의 손이

더욱 거칠어지는 겨울이 왔다

반가운 손님은 없어도

까치는 감나무 위에 날아와

산기슭이 메아리치도록

깍깍 울며 아침을 열고

동구밖에 있던 시베리아 북풍이

빈 마당을 휘~ 쓸고가는

평화로운 저녁이면

처마 끝에 비스듬히 기댄 굴뚝엔 장작 연기가

온돌을 달구며 피어오르고

가물거리는 호롱불이 겨울밤을 지켰다

외양간에는 소가 간간이 요롱을 흔들며

시름에 그득한 눈으로 되새김질에 밤이 깊어갔다

문살 사이에 창호지로 붙인 아이 손바닥만한 유리창 너머로

검은 크레파스를 칠한 듯 칠흑같은 밤이 오면

어느집 개 짖는 소리가 컹컹 차가운 밤기운을 갈라댔다

밤이면 군용 모포 휘장이 둘러지고

솜이불 한 채에 온 가족이 발을 묻으면

새벽녘엔 윗목에 떠 둔 물에 얼음이 서렸다

햇짚으로 엮은 말쑥한 뒤주엔

밤새 소리 없이 눈이 내린 아침이면

이엉이 하얀 고깔모자를 쓰고

장독마다 베레모 하나씩 썼다

움속에 무우 한 구덕

뒤안간에 묻어둔 김장독에 김치 세 동이

헛간에 나락 여나믄 가마니면

한해 겨울이 거뜬하게 나고

엄동설한이 지나고 새 봄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