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길시 2021. 10. 20. 08:32
글쓴이 김명기 [홈페이지] 2011-06-10 07:58:17, 조회 : 783

 

로데오

뭐지? 하늘에 무슨 일이 생긴 것인가? 우리 지구를 맡은 신이 실연이라도 한 것인가? 지난주부터 계속 하늘은 납처럼 무거운 잿빛이다. 아파트 숲 너머 먼 산들은, 차례대로 채도가 옅어지다 마침내 사라진다. 며칠 째 손목이 시큰거린다. 뭘까? 신마를 길들이다가 생긴 후유증인가?

지난 주말 지도하는 대학생들에게, ‘나도 얌전한 말 타고 싶다.’ 라고 농담처럼 말했다. 처음 마방에 와서 반항하는 말, 길들지 않은 말, 며칠 쉬어서 힘이 차서 방귀를 뀌어대며 길길이 날 뛰는 말, 발정으로 땀을 뻘뻘 흘리며 뒷발차기를 하는 말. 지난 10년 동안 타온 말들은 대개 이랬다. 그리고 그런 말은 대개 내 몫이다.

고개를 까딱이는 얌전한 말을 타고 시골길을 가며, 함께 뛰는 진돗개와 앞서거니 뒤서거니. 마침 앞산에서 불어오는 서늘한 바람은 말과 나의 이마를 스친다. 신록 가득한 가로수 길. 나는, ‘말을 탄 남자가 있는 숲 길’ 이라는 풍경화 속에서 천천히 멀어진다. 드디어 눈처럼 흩날리는 아카시아 꽃잎으로 마무리. 이런 여유를 느낀 것은 아마 백만 년 전이다. 나는 취미가 아닌 일로 승마를 하고 있다. 소설가 김훈의 지적대로, 밥벌이의 지엄함을 안다.

새파란 하늘 아래, 햇살이 짧은 그림자를 만든다. 뜨거운 운동장 한가운데 말은 꿈쩍도 않는다. 조마삭을 걸고 장 채찍으로 엉덩이를 쳐도, 말은 뒷걸음질 치며 반항한다. 갑자기 오른 쪽으로 돌며 조마삭을 목에 감아, 나와의 거리를 좁히고 엉덩이를 곧장 내게 향한다. 위험하다. 말이 조마삭을 목에 감으면, 장정 두세 사람이 끌어도 말을 당할 수 없다. 말이 엉덩이를 사람에게 향하는 것은 가장 위험한 협박이다. 다음 순간 날아오는 발길질은, 눈에 보이지도 않는다. 팟! 소리와 함께 발굽에서 떨어진 흙먼지만이 뒷발이 지나갔음을 알린다.

워어~워... 나는 천천히 말의 왼쪽으로 간다. 가볍게 말의 목을 건드리며 말의 흥분을 삭인다. 이제 결정해야 할 때다. 더 늦으면 말은 자신의 승리를 확신할 것이다. 나는 순간적으로 말에 오른다. 말은 뒷걸음질 칠 순간을 놓치고 나를 등에 울리고 만다. 말은 앞으로 튀어나가려고 한다. 나는 고삐를 단단히 쥐고 재갈을 두세 번 쳐서 말이 전진하지 못하도록 한다. 말은 뒷걸음을 치며 인마전도를 꾀한다. 그러나 말과 사람이 함께 뒤집어 지는 일은, 꿀벌이 침을 쏘는 일과 같다. 말 자신도 죽을 수 있는 것이다. 기승자는 반드시 왼쪽이나 오른 쪽으로 뛰어내려 말에게 깔리지 말아야 한다. 500kg 이상 무게의 말이 체중을 싣고 사람위에 뒤집어 지면, 비스킷처럼 좌골이 으스러질 수 있다.

나는 말의 엉덩이에 채찍을 댄다. 말은 번개 같이 뒷발을 찬다. 말 엉덩이가 하늘로 솟고 나는 앞으로 쏠린다. 말은 이때다 싶어 고개를 숙인다. 나를 앞으로 낙마 시킬 작정이다. 나는 종아리를 조여 말에 바짝 붙으며 상체를 뒤로 젖힌다. 그리고 다시 재갈을 잡아채며 말을 통제한다. 로데오다. 순간적인 낙마 기회를 놓친 말은 앞발을 높이 든다. 나는 고삐를 단단히 쥐며 앞으로 몸을 숙여 말의 목에 착 달라붙는다. 나는 순간적으로 말과 나의 균형을 유지한다. 말은 소리를 지르며 앞발을 번갈아 허공에 젖는다. 나는 상체에 무게를 실어 말을 억지로 착지하게 만든다. 말은 앞발이 땅에 닿자말자 다시 더 힘차게 기립한다. 아직 승마를 잘 모르는 대학생들은 ‘와아 멋져요.’ 라며 박수를 쳐 말을 더 흥분시킨다. ‘멋지다고? 네가 해봐!’ 나는 속으로 투덜거리며 0.5초 만에 다시 말에게 집중한다.

두세 번 기립 하던 말은 이내 포기한다. 말의 뜻대로는 되지 않는다. 기승자가 낙마하지 않는 것이다. 말은 재빨리 작전을 바꾸어, 익숙하지 않은 오른 쪽을 맴을 돌기 시작한다. 나는 왼쪽으로 고삐를 당여 말을 멈추게 한다. 말은 잠시 속도를 늦추었다가, 다시 오른 쪽으로 맴을 돈다. 길이 3미터, 높이 170센티미터의 말위에서 맴을 돌면, 휙휙 스치는 풍경은 거의 희미한 환영으로 보인다. 나는 시선을 말의 두 귀에 집중한다. 말은 잔뜩 성질이 나서 귀를 바짝 붙이고 있다. 말은 이제 최후의 반항을 준비한다.

맴을 돌고 뒷걸음질 치던 말에게 나는 채찍을 강하게 댄다. 어깨와 엉덩이 양쪽에 채찍을 대면서도 재갈을 단단히 물려, 말이 전진도 후진도 하지 못하게 한다. 2~3분 정도 쩔쩔 매던 말은 마침내 결심 한 듯, 총알처럼 앞으로 튀어 나간다. 시속 50~60 km/h 정도. 나는 3~4걸음 안에 말을 제어해야한다. 말은 한 걸음에 10미터를 나르는 것이다. 운동장 벽이 순식간이 눈앞에 들이 닥친다. 나는 모터사이클 선수처럼 몸을 왼쪽으로 눕히고 고삐를 잡아 말의 방향을 돌린다. 이때 고삐를 느슨하게 잡으면 나는 말과 이탈하고, 시속 50~60km/h로 날아가 버릴 것이다. 말은 땅을 깊이 파며 방향을 튼다. 흙이 사방으로 튄다. 그래도 곧장 30~40km/h로 속도를 줄인다. 나는 이대로 말이 구보하게 둔다. 사방은 여전히 희미한 잔영으로 남아, 빠르게 뒤로 물러난다.

당연히 여기서 끝난 것이 아니다. 마지막 반전이 준비되어 있다. 말은 갑자기 고개를 땅으로 길에 끌어 고삐를 확보한다. 순식간에 뒷발을 차며 속도를 높인다. 고삐를 느슨하게 하여 나의 균형을 잃게 하고 속도를 높인 뒤, 하늘로 솟아올라 나를 낙마 시키려는 말의 마지막 계략이다. 나는 미소를 짓는다. 이제 끝이 보인다. 말은 팝콘처럼 통통 솟아오르고, 나는 말 잔등에 껌 딱지처럼 붙어있다.

나는 말의 재갈을 강하게 당겨 속도를 유지하고, 박차를 주어 ‘네 행동은 내 맘에 들지 않는다.’ 라는 부조를 준다. 말은 운동장을 돌며 두세 번 같은 행동을 반복하고, 나는 그때마다 동일한 징계를 준다. 말은 마침내 속도를 줄인다. 지친 것이다. 나는 오히려 속도를 줄이지 않도록 다시 말에게 박차를 가한다. 나는 포기하지 않았다. 포기하면 모든 게 수포다. 내일이면 다시 여기부터 순치해야 한다. 끝장을 봐야 한다. 말이 포기한다. 500kg의 말을 78Kg의 남자가 순치한 것이다. 이제부터 말의 질주는 반항이 아닌 정상적인 ‘일’ 또는 ‘업무’ 가 된다. 아니면 ‘산책’이나 ‘운동.’

말이 5분 정도 더 질주하게 만들어 말의 힘을 뺀다. 말의 온 몸은 땀에 젖어 번들거린다. 하얀 땀이 뚝뚝 흘러내려 발밑의 모래를 검게 적신다. 말의 몸통이 흔들리며 커다랗게 부풀기를 반복한다. 숨이 가쁜 것이다. 말에게는 더 이상 사람에게 반항할 힘도 의지도 남아 있지 않다. 나는 평보를 하며 말이 편안하게 호흡하게 하고 말의 목을 도닥여 칭찬한다. ‘거봐, 반항하지 않으면 너도 편안하고 착한 말이잖아.’ 이제부터는 말에게 속보하며 사람에게 순종하는 법을 가르친다. 이 더 이상 말은 사람에게 반항하지 않을 것이다. 사람과 함께 초원을 가르며 노는 법을 배우게 될 것이다. 나는 오늘부터 3일이 지난 수요일쯤에야, 온 몸 여기저기 생긴 통증이 어지간히 가라앉을 것이다. 나는 갈기를 쓸어준다. ‘말아 진짜 수고했다.’

나는 말에서 뛰어 내리며 외친다.

‘다음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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