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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년만의 의미있는 만남

최길시 2021. 10. 19. 09:05
글쓴이 신성권 2011-03-25 01:20:08, 조회 : 1,040

 

 

때 : 2011년 3월 19일 12:00
장소 경기 성남 분당 율동 소재 음식점 '마실'
참석자 최길시 선생님
정규완
최상래
신성권
만남의 이유 사제간의 만남에 무슨 이유가 필요하겠습니까?

최길시 선생님이란 분은.......
우리들이 강릉고등학교라는 곳에서
1년의 시간을 보내고, 서론/본론/결론(1/2/3학년)의 본론 부분에
해당되는 시기에 담임과 학생으로 만난 사이입니다.
질풍노도의 시기에 때론 아주 엄하게 학생들을 다그치기도 하셨죠.
우리의 기억에는 교직자가 아닌 교육자로 자리매김한 그런 분이셨습니다.
설레는 마음은 초등학교 시절 소풍전날의 마음과 비슷했습니다.
(내용은 좀 다르지만)
32년만의 해후에 늦을까 저어하며 부지런히 가니 열두시 정각이었습니다.
카운터에 확인하니 '최길시'님 앞으로 예약이 되어있지 않더군요.
자세히 보니 '최길석' 으로 되어 있어서 시정을 요구했습니다. 나중에 보니
'ㄱ'' 을 수정액으로 지우고 '최길서'로 임시 땜질했기에 또 지적하여
이번에는 제대로 출력하여 '최길시' 님으로 예약 보드를 고쳤습니다.
우리의 인생도 우여곡절이 있듯이 틀린 것은 수정, 또 수정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예전에 친할 親에 대한 뜻풀이를 배운 적이 있었는데,
파자(破字)를 하면 설립(立) 나무목(木) 볼견(見) 으로
나무 위에 올라서서 멀리서 오는 친구를 바라본다는 것으로 기억합니다.
오죽 보고 싶었으면 조금이라도 빨리 보려고 나무위에 올라서서
먼 곳을 바라볼까 생각이 깊어지던 때가 있었습니다.
전 2층 창문을 통해 이제나 오실까 저제나 오실까 기다렸죠.
설레는 색시의 맘이 이럴까, 귀인을 기다리는 자의 마음이 어러할까.....
마침내 연로하신 스승께서 환한 얼굴로 다가서서는 절 안아 주셨습니다.
선생님께선 뻘쭘하다고 표현하셨는데, 전 감동이었습니다.
간단히 손을 잡아 주실 수도 있었는데 말입니다.
그만큼 선생님께서도 벅찬 심정을 표현하시는 것으로 보엿습니다.
정말 훈훈한 순간이었습니다.
이후엔 식사와 과거의 기억을 더듬는 모습이 참으로 정겨웠습니다.

나중에 식사 마치고 선생님께서 저의신발을 찾아서 내어 주시더군요.
물론 다른 신발이었지만, 참 세세하게 오늘의 감동을 느끼고 계시다는 생각에
왜 진작 찾아 뵙지 못했을까 후회도 많이 되었습니다.

식사 후에 하신 건강에 대한 당부, 업(業)에 대한 당부를 하셨는데,
살아계신 어머님께 잘 하라는 말씀도 함께 하셔서 가슴을 뭉클하게 했습니다.
(공교롭게 3 제자 모두 어머님만 살아 계심)
역시 스승님은 스승님이시구나!
지천명에 이른 제자들도 혹 페이스를 잃을까 염려하시는 모습을 보여 주셨습니다.
언제 다시 만나뵐 수 있을까
다음을 기약해 봅니다.
선생님 그 때까지 건강 잘 지키시고
제가 드린 만수무강주(더덕주) 가 도움이 되기를 충심으로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