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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인(文人)의 라면

최길시 2021. 10. 17. 13:57
글쓴이 김명기 [홈페이지] 2010-12-27 16:20:09, 조회 : 991

 

 

문인(文人)의 라면

이미 4월. 시간은 가고 나는 초조하다. 매월 열 꼭지쯤 쓰던 글도, 3월엔 세 꼭지 밖에 쓰지 못했다. 가슴 속의 공허에, 메마른 황사바람이 드나드는 것을 느낀다. 담배를 끊은 지 6개월. 여전히 오른손 검지와 중지를 살짝 벌리고 있다. 습관은 칠순노인네의 가래침처럼 끈질기다.

오랜만에 만난 아우에게 물었다. 하루 종일 밥을 얻어먹지 못한 삽살개 같이 우울한 표정으로.

큰일이야. 나는 얼치기 무명 문인에서, 이젠 시간까지 없는 얼치기 무명 문인이 되어 버렸어.
‘그냥 그대로 하세요. 생각이 가슴 속에 고일 때까지 기다리셔야죠. 어쩌면 그 세 꼭지가 현재의 형님에게 적당한 창작 생산량일 겁니다.’
그건 알아. 다만 세상 속에서 살려니, 예전의 글 쓰던 가난한 내가 잊어져 버릴 것도 같아. 실은 그게 제일 두려워. 살면서 겨우 한 번 진실에 근접한 삶이었는데.
‘지금도 나빠 보이지는 않으세요. 힘차게 일하시잖아요.’
그런가?
‘그렇죠.’
하지만 내가 자꾸만 변해.
‘어떻게요? 제가 보기엔 그대로신데, 하고 싶은 말 다하시고, 성격 급하고.’
숲에서 TV없이 살 때는, 어쩌다 개그를 보고도 웃지 못했지. 요즘 개그는 몇 번 보아서 교육되어야 웃기잖아? 어쩌다 분식집에라도 가면, 정말 바보상자라는 생각이 들었지. 사람들은 왜 왜 저런걸 보며 웃지? 씹다만 라면 발을 입에 물고. 하지만 현실의 사회 속에서는 코드가 다르면 대화도 안 돼. 나는 이제 개그를 보고 웃어.
‘세상 사람과 함께 하시는 법을 배우시는 것이겠지요.’
나는 그때의 내가 좋아. 늘 투명한 시선과 거리낌 없는 마음으로 사물을 보았어. 제대로 된 기준을 지닌 느낌이었지. 하지만 이대로 괜찮은 걸까? 고민하지 않아도?
‘쉽게, 언제든 다가가 편히 앉을 수 있는 오솔 길 곁의 빈 벤치. 그게 형님 글의 느낌입니다. 돈 벌려고 쓰시는 것 아니잖아요?’
그건 그렇지. 하지만 나는 나 스스로 문인이었으면 좋겠어. 세끼 라면만 먹더라도 '문인의 라면'이라면 평생 보약 달이듯 끓여먹겠어. 자네 내 글이 글 꼬락서니는 갖추었다고 생각하시나?
‘나름대로 독자층이 있으시잖아요? 형님 글은 강호 무림에 숨겨진 고수의 글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분들 꽤 되죠. 언젠가는 꼭 빛을 보게 되실 겁니다.’
무림? 허허 우리나라 최고대학 문학 박사님께서,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위로가 되는군. 내 마음이 좀 바쁜가봐.
‘그 정도 내공은 넘어서셨잖아요?’

나는 슬며시 웃는다. 아우는 나를 부끄럽게 만든다. 그러나 이놈의 세상은 늘 사람을 애걸복걸, 안달복달하게 만든다. 나는 문득 반쯤 찬 소주잔을 들고, 이슬 젖은 달을 바라보던 시간이 그립다. 코끝에 서늘한 숲의 향기가 잠시 머문다. 이제는 죽고 없는 복실이가 짖는 소리.

하지만 이따위 세상에게 지기도 싫다. 소유와 여유 사이, 마음은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 도무지 알 수 없다. 다시 한번 이미 4월. 시간까지 없는 얼치기 무명 문인인 나도, 세상도, 황사 바람에 가려져 있다.


천당(天堂) 아래 분당(盆唐)에서...